'디플레이션과 엔고 탈출을 위해서는 윤전기를 돌려 화폐를 무제한 찍어내는 등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다.', '우리나라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다시 켜지고 있다.', '일본 경제는 가속페달 밟고 있는데, 한국경제는 신발 끈만 묶고 있다.' …
요즘 신문을 펼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들이다. 잃어버린 20년을 되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아베노믹스가 한국 언론에 커다란 충격파를 던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안 된다는 듯 신문은 더욱 더 자극적인 언어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아베노믹스가 정말 경제 정책적으로 장기적 효과가 있는 것인지, 또 한국경제가 정말 다가오는 위기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냄비 속 개구리'인지는 여기서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어떤 사안에 대한 냉철한 분석보다는 항상 감정적이고 계몽적인 호소를 앞세우는 언론의 행태에 이미 익숙해진 탓인지 웬만한 호들갑에도 사람들은 좀처럼 꿈쩍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언론은 더욱 자극적인 언어를 찾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언론의 장단에 춤추지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경제가 정말 나빠지는 것은 아닌가? 경제민주화를 시행하다간 정말 성장의 엔진이 꺼지는 것은 아닌가? 복지사회를 건설하다가 국가가 부도나는 것은 아닌가? 이제까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부정적 부작용들이 갑자기 대문자로 확대되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병을 치료하는 약품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도 모두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다 갖고 있다. 약을 쓸 때 그런 것처럼 정책도 시행하다보면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평상시 사람들이 약 복용 시 주의사항을 잘 읽지 않는 것처럼 정책 시행 과정의 부작용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대부분 부정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주의사항을 너무 강조하면, 사람들은 갑자기 불안해진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뉴 저먼 시네마를 이끈 독일의 유명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이 영화작품 제목은 불안의 사회심리적 효과를 잘 드러낸다. 사람이 불안에 시달리면, 그 불안은 끝내 현실이 된다. 불안은 대개 아무런 원인도 없이 갑작스레 찾아온다. 어떤 환자의 경우 뚜렷한 신체적 병인이 없는데도 구토, 어지럼증, 고통을 겪는 경우가 있다. 원인은 없고 증상만 나타나는 환자에게 원인이 없다는 사실은 더욱 커다란 불안의 원인이 된다. 의사가 온갖 검사를 다해보고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진단을 해도 환자의 증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복용하면 주의사항에 쓰여 있는 부작용들이 그대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불안이 병을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것이 해롭다는 암시나 믿음이 약의 효과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병을 만드는 현상을 '노시보 효과'라고 한다. 약효가 전혀 없는 거짓 약을 진짜 약으로 가장하여 환자에게 복용토록 했을 때 환자의 병세가 호전되는 '플라시보 효과'의 부정적 짝이 노시보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효과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우리 인간사에는 뚜렷한 원인이 없어도 나타나는 증상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우리가 행위를 할 때면 항상 어떤 기대를 한다. 미래에 나타날 어떤 현상에 대한 기대는 행위의 커다란 동기가 된다. 좋은 공기를 마시면 병이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은 깨끗한 공기를 좋은 치료약으로 만든다. 아무리 노력해도 치유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과 불안 앞에서는 온갖 좋은 약도 약효를 잃거나 독약으로 변해 버린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할 때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자의 관심을 끌거나 국민을 계도하기 위해 자극적인 언어를 찾을수록 읽는 사람은 둔감해질 수 있다. 그렇지만 더 무서운 것은 불안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영혼을 잠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가 잘못 선택한 언어로 환자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언론의 자극적 말은 오히려 불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의심조차 불안에서 오는 병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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