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부실 대기업의 신속한 정리 방침을 밝힘에 따라 유동성 위기에 처한 조선ㆍ해운업종에 구조조정 태풍이 몰아칠 전망이다. 특히 심각한 자금난 탓에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은 STX조선해양은 인적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부채비율이 급증하고 신용등급이 떨어지면서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는 해운업계의 운명도 풍전등화다.
2일 STX조선해양에 대한 경영 실사를 진행 중인 채권은행 관계자는 "6월 말까지 실사를 마치고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며 "결과를 봐야겠으나 강도 높은 슬림화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STX조선해양은 올해 4,000억원, 내년 2,8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한다. 올해 만기인 회사채에 대해선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을 통해 상환하거나 만기 연장이 가능하겠지만, 조선업 경기 전망이 불투명해 몸집을 줄여야만 향후 생존이 가능하다는 게 채권단의 판단이다.
조선업계도 삼성중공업이 1분기 4,402억원의 깜짝 실적을 올린 것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퇴출 공포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올해 만기되는 회사채 규모가 1조5,100억원에 달한다. 특히 중소형 조선소들은 발주 감소, 선가 하락 여파로 줄도산하는 실정이어서 이미 업계 전체가 몸집 줄이기에 들어갔다는 평가다.
해운업의 사정도 만만치 않다. 국내 4대 해운업체인 한진해운, 현대상선, SK해운, STX팬오션의 회사채 잔액은 총 7조620억원. 이 가운데 올해 1조9,960억원이 만기 도래한다. 특히 현대상선의 올해 만기 회사채는 무려 7,200억원에 달한다. 결국 현대상선은 이날 "현대증권 우선주 503만7,060주에 대해 매각을 진행 중"이라며 "현대증권 주식을 담보로 한 교환사채(EB) 발행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그러나 EB는 기업의 신용이 떨어져 부채 만기 연장이 어려울 때 우선 발행해 급한 불만 끄는 임시방편이라는 지적이다. 경기가 호전되지 않을 경우 유동성 위기는 상시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진해운도 이날 3,0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김익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장기 불황 탓에 수익성이 악화되다 보니 작년부터 해운업계에 유동성 위기가 초래됐다"며 "만기 회사채 도래 규모도 부담스러운 수준인데다 자금 조달 환경도 좋지 않다"고 우려했다.
조선ㆍ해운업의 위기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체들의 평균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2010년 11%에서 2011년 8.4%, 지난해 4.2%로 급감 추세다. 해운업계는 사정이 더 심각해 2010년 4.7%에서 2011년 마이너스(-4.8%)로 추락했고, 작년에도 -3.8%의 역성장세를 보였다.
문제는 노동집약적 산업인 해운ㆍ조선업계가 구조조정 위기에 처하면서 협력업체에까지 여파가 미치고 있다는 점. 업계가 구조조정에 돌입하면서 채권을 가진 조선기자재업체 등 협력업체들이 연쇄부도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특히 기업이 물품구입 대금 등 상거래채권인 외상매출채권을 협력업체에 발행하면 현금화를 원하는 협력업체가 이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B2B) 연체가 공포의 대상이다. 구매기업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대금을 못 주게 되고, 이 때문에 협력업체들이 대거 연체상태에 빠지거나 연쇄부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금융감독원이 B2B대출 상환을 20일부터 130일간 유예키로 해, 15조원에 달하는 협력업체의 B2B대출이 안전판을 마련하게 됐다. 당장 쌍용건설과 STX조선해양의 754개 협력업체가 혜택을 입을 전망이다. 그러나 이 역시 구조조정 추진이 중단되거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는 경우엔 대금 상환이 불가능해 연쇄부도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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