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발주는 일부 업계의 이기주의다."(종합건설업체)
"잘못된 하도급 관행을 뿌리뽑을 방법이다."(전문건설업체)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공사 분리발주 법제화를 놓고 건설업계가 내분에 휩싸였다. 지금까지 상하수도, 기계설비 등 전문공사가 2가지 이상 섞인 종합공사는 종합건설회사가 일단 수주한 뒤 전문건설회사에 하청을 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분리발주가 이뤄지면 전문건설회사도 직접 공사를 수주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분리발주는 하도급 과정의 부조리에 시달리던 전문건설업체들의 오랜 숙원이기도 하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전문업체와 종합업체는 각각 대변인격인 대한전문건설협회(전협)와 대한건설협회(건협)를 통해 최근 정부에 분리발주 찬반 건의서를 냈다. '불법행위', '품질저하' 등 상대를 흠집 내는 표현으로 날을 세웠다.
전협은 "공사대금 미지급, 공사비 빼돌리기 등 종합건설사의 불공정행위가 도를 넘은 만큼 100억원 이상 규모의 국가공사에 분리발주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반면 건협은 "분리발주가 허용되면 공정관리가 어려워 효율성 및 품질이 떨어지고, 하자 발생 때 책임소재도 불분명하다"며 법제화를 반대하고 나섰다.
건설업계의 내분은 최악의 수주 가뭄 탓이다. '곳간(수주고)에서 인심 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올해 1월 국내 건설공사 수주금액은 4조3,779억원으로 2002년 이후 동월 대비 가장 낮다. 2월 역시 작년 같은 달에 비해 39% 급감했다. 건협 관계자는 "경기가 좋았을 땐 다툼이 덜했지만 이젠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했고, 전협 측은 "종합건설사들의 가격경쟁 탓에 하청업체인 전문건설사 사정은 더 나빠져 물러설 곳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더구나 건설수요 감소는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어서 업체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윤영선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1980~90년대 고도성장기엔 민간(주택)과 공공(SOC) 부문 모두 수요가 풍부해 건설경기가 좋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성장이 한계에 봉착했다"며 "정부가 4대강 같은 대규모 사업으로 경기를 끌어올리기도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국민경제에서 건설업이 점하는 비중도 줄어들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은 90년대 20%를 웃돌았지만 2010년 15.1%로 떨어졌다. 건설회사 부도도 줄을 이어 2005년 1만3,202개였던 종합건설업체 수는 지난해 1만1,304개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더 많은 업체가 퇴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명래 단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건설업 비중이 선진국 수준(10%대)보다는 여전히 높아 경쟁력 있는 업체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고, 윤영선 연구위원은 "정부에 의지하려 하지 말고 환경, 방재 등 국내외 신규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분리발주
공사를 한 업체에만 발주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공정으로 나눠 발주하는 방식. 분리발주가 법제화하면 전문건설회사가 종합건설회사로부터 하도급을 받지 않고 직접 공사가 가능하다.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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