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술계에서 김달진(58)은 하나의 브랜드다. '걸어다니는 미술사전'으로 불리는 그는 중고등학생 시절 전시장 팸플릿 수집을 시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 가나아트센터 등 국공립미술관과 상업화랑에서 일하며 오롯이 40여년을 미술자료 수집에 바쳤다. 단순히 수집벽을 넘어 미술자료를 분석한 자료집도 펴낸다. 2010년 한국근현대 미술계 인사 4,909명을 정리한 에 이어 1945년부터 1999년까지 설립된 미술단체를 소개한 를 최근 냈다.
'자신의 취미를 직업으로 만든 이'로 올해 중학교 도덕교과서(금성출판사)에 소개될 정도니 그 정성과 열의를 짐작할 만하다. 40여년 모은 자료로 2008년 세운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단행본ㆍ화집 2만2,000권, 정기간행물 1만권, 미술학회지 1,027권, 팸플릿 2만3,000점 등 국내 최대 미술아카이브를 자랑한다. 사립박물관으로 드물게 평일에 무료 공개하고 있다.
김 관장이 요즘 시름에 빠졌다. 평생을 바친 박물관이 이사를 가거나, 최악의 경우 폐관해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사연인 즉 이렇다. 2008년 서울 종로구 창성동에 박물관을 개관한 김 관장은 201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임차지원사업에 당선돼 현재 위치인 마포구 창천동으로 이전했다. 문화예술위가 건물주와 계약해 박물관에 공간을 임대해주는 사업이었다. 1개 층 75평에서 3개 층 141평으로 공간이 늘어나면서 김 관장은 직원을 더 뽑았고, 자료도 더 구비했다.
하지만 내년으로 이 지원이 끝 난다. 자료들을 보관ㆍ전시할 새 공간을 찾아야 한다. 김 관장이 현재 조달한 돈은 모두 3억원 정도. 서울 시내에서 이 금액으로 빌릴 공간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땅값이 싼 경기도로 이전도 생각해봤지만, 이용자들의 불편이 커질 것 같아 망설여졌다.
고심 끝에 김관장이 내놓은 안은 자료 기증이다. 박물관 소장자료 모두를 공기관에 기증할테니,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해 앞으로 20년 짧게는 10년만이라도 자료의 보존, 연구, 활용에 관한 책임과 권한을 자신에게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미술자료를 가득 넣은 백팩과 손가방을 들고 한국일보에 온 김 관장은 "한국은 해마다 10여 개 비엔날레가 열리는 '비엔날레 공화국'이지만 이 미술자료 맡겠다는 데가 한 곳 없다"며 씁쓸해 했다.
지방자치단체와 문화계가 오매불망 비엔날레를 개최하려는 궁극의 목적은 한국미술의 예술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우리미술의 역사와 정체성을 제대로 보존하고 기억하는 토대 위에서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미술아카이브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 보관된 수많은 '기억'들이야말로 '미술 대한민국'의 주춧돌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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