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라는 영화가 있다. 신상옥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신영균 최은희 남궁원 허장강 김희갑 등등 당대의 스타들이 총출동해 만든 영화다. 개봉연도는 1963년. 무주 구천동 깊디 깊은 산골에서 밭뙈기만 부쳐먹던 농투성이들이 벼농사를 지어보고자, 목숨을 걸고 정으로 산을 쪼개 금강의 물을 당길 수로를 놓는 스토리다. 내용인즉 '잘 살아 보세'. 쿠데타로 막 정권을 거머쥔 박정희를 근대화의 전도사로 찬양하는 노골적인 영화였다. 그땐 그런 관급 계몽 영화도 만들고, 봤다. 별 매력도 없는 영화 얘기를 모두에 꺼낸 건, 눈치챘겠지만 영화의 배경으로 깔리는 이야기와 길이 오늘 여행의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기십 년 전 우리 강이 모두 그러했겠지만, 금강의 상류는 참 곱다. 상류다. 하류는, 바라보고 있으면 오스트리아 건축가 훈데르트바서의 "직선은 죄악이다"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 4대강 분탕질의 한복판이 돼 버리고 말았지만 상류는, 아직 참으로 곱다. 봄을 환하게 피워냈던 나무들의 들뜬 낯빛이 차오르는 신록으로 변해가는 계절,"봄이면 잠두가 어른거린다"는 어느 선배의 말을 좇아 무주로 갔다. 전북 무주군 무주읍 용포리 잠두마을. 북으로 흐르던 금강이 크게 꺾여 남으로 방향을 바꾸는 강변 마을이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깬 청둥오리들이 천천히 물 위를 떠가고 있었다. 오늘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면 오늘을 굶어야 하는 야생이 오늘을 준비하는 모습은 다급하지 않았다. 낭자했던 꽃들이 이울고 있었다. 새들이 곧 날아올랐다.
"이냥 길 따라 걸어가면 한참 걸려. 옛날엔 그래서 강을 건너 다녔지. 저 위 대소마을서 두어 번, 굴암리서 또 두어 번, 그리고 여기 잠두에서 한 번, 그렇게 대여섯 번은 강을 왔다갔다 건너야 읍내여. 그럼 두어 시간이면 돼야. 그땐 물이 적었응께. 그냥 바지 걷고 건너고, 겨울엔 얼음 위로 걷고 그랬지."
차로 무심코 지나치면 래프팅 업체의 커다란 간판밖에 안 보인다. 하지만 금강 상류엔 물길을 따라 땡감 만한 마을들이 곶감처럼 꿰어져 있다. 잠두도 그 중 하나다. 외지고 외진 무주에서도 첩첩이 산과 물로 가로막힌 금강 상류는 오랫동안 궁벽한 산골을 벗어나지 못했다. 길도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좁고 위태롭게 나 있었다. 사람들은 이 길을 '벼룻길(벼랑길)', 또는 '모랭이길(모퉁이길)'이라 불렀다. 지금도 대소리부터 굴암리까지는 티베트에나 있을 법하게 좁은 길이 절벽에 붙어 있다. 모진 것이 목숨이라서, 약초 지고 산나물 이고 사람들은 이 길 따라 금산장, 무주장을 오갔다. 향토사학자 유재두씨는 "처음엔 사람만 다니다가 일정 때 잠두에 처음 찻길이 닦였다"고 설명했다. 이후 곳곳에 다리가 놓이고 새 길이 뚫리면서 벼룻길은 잊혀진 길이 됐다.
'쌀'의 첫 신은 상이군인 차용(신영균)이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영화에선 구천동으로 나오지만 터덜거리는 버스가 달리던 좁고 예쁜 비포장길이 사실 잠두마을을 싸고 도는 금강 옛길이다. 무주군 부남면과 금산을 잇는 이 길은 1970년대 잠두교가 놓이고 국도가 생기면서 망각 너머로 잠겨 버렸다. 그 탓, 아니 그 덕에 1960년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았다. 잠두1교서부터 잠두2교까지 2㎞ 남짓. 걸었다. 폴폴 먼지를 피워내는 버스는 없었다. 날품 팔러 읍내 나가는 사람들도, 책보를 맨 아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꽃들은 어김없이 피어서 낯선 여행자를 맞아줬다. 머리 위에선 가로수로 심은 벚꽃이 내려 날리고 허리춤에선 조팝나무의 꽃이 풍성하게 터져 올라서, 새하얀 터널 속을 걷는 듯했다.
도보여행자들이 주로 찾아오는 벼룻길 구간은 부남면 소재지인 대소리부터 율소마을까지다. 시멘트 포장을 벗어나 강변에 대롱대롱 달린 길이 약 1㎞. 흙길이 무척 좁고 바닥은 바위조각이 밟히는 너덜겅이다. 등산화를 신지 않으면 불편할 수 있다. 조항산(799m) 자락이 급하게 몸을 낮춰 금강에 잠기는 절벽이라 그렇게밖에 길을 낼 수 없었다. 길은 강에 바투 다가가 있다. 좁다란 길이 강의 모습을 감췄다 다시 보여주길 반복했다. 금낭화의 꽃술을 보러 고개를 숙였다. 부스스한 표정의 반가운 할미꽃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풀뱀 한 마리가 놀라서 달아났다. 연둣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산에 어른거리는 금강의 물빛이 예닐곱 발자국마다 발을 멈추게 만들었다.
벼룻길 율소마을 가까운 곳에 각시바위라는 듬직하게 생긴 바위가 하나 있다. 이곳 전설에 구박 받던 며느리가 돌로 변했다고도 하고, 옷을 잃어버린 선녀가 바위로 굳어버렸다고도 한다. 바위에 허리를 굽히고 통과할 수 있는 작은 동굴이 있다. 자연 동굴이 아니라 사람 손으로 뚫은 구멍이다. 일제 시대 굴암리에 물을 끌어대는 농수로를 건설하던 흔적이다. 하얀 쌀밥을 먹는 꿈에 부푼 당시 부남면 주민들이 정과 망치로 거대한 바위에 10m가 넘는 동굴을 뚫었단다. 그러나 수로 공사는 실패로 끝났고 동굴은 허기진 주민들이 산나물 뜯으러 가는 지름길이 됐다. 동굴 입구엔 밥풀 같은 조팝나무꽃만 봄마다 피어난다. '쌀'의 모티프는 여기서 따 왔다. 사족을 붙이자면, 영화의 피날레는 5ㆍ16세력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장면이다.
내내 조항산 쪽 강변을 따라 걸었다. 강이 좌와 우를 나눠 풍경을 다르게 만들며 흘렀을 리 만무하겠지만 이곳 벼룻길은 지금 그런 모습이다. 벚꽃 날리는 좁은 흙길의 반대 쪽 강변은 시멘트 제방으로 바뀌었다. 듣자니 재작년과 작년, 우리나라 강을 관리하는 기관이 남은 예산을 소진하려 '정비사업' 명목으로 그렇게 했단다. 여행자도 말리고 주민도 말리고 심지어 지방자치단체도 말렸는데 수로봉(506m)쪽 강변은 기어이 그리 되고 말았다. 어쩌면 금강을 가운데 두고 살천스러운 개발의 풍경과 마주보고 있어서, 벼룻길의 조붓함이 더 애틋한 것인지 모르겠다. 생각을 끊고, 아껴 가며 남은 길을 걸었다. 조팝나무꽃 지고 나면 찔레꽃 피고, 찔레꽃 지고 나면 짚신나물 피는 벼룻길을 금강은 말없이 어루만지고 있었다. 저물어 쉬러 돌아오는 새들이 다시 금강에 깃들고 있었다.
여행수첩
●벼룻길을 걸으려면 먼저 대소리를 찾아가야 한다. 대전통영고속도로 금산IC에서 나와 진안 방향 13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닿는다. 이곳에서 종점인 서면마을까지 약 15㎞다. 대소리에서 용담댐 방향으로 조금 더 간 곳에서 있는 도소마을에서 출발할 경우는 약 19㎞. ●잠두리를 찾아가려면 금산IC에서 나와 무주읍으로 향하는 37번 국도를 타고 가면 된다. 잠두리에서 종점 서면마을까지는 약 7.2㎞, 벼룻길 각시바위까지는 약 6.5㎞다. 걷는 길에 편의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물과 간식 등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무주군관광안내소 (063)324-2114
무주=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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