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출자규제나 금산분리강화, 일감몰아주기 규제 등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압박에 대해 사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큰 입장차가 없었다. 대기업들은 당연히 반대입장이었지만, 중소기업들 역시 특별히 이해관계가 없는 터라 오히려 '과잉 경제민주화'움직임에 대해선 우려의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하도급법은 달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분야였고 줄곧 대기업은 강한 반대, 중소기업은 적극 찬성 입장을 피력해왔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경제민주화 입법으론 가장 먼저 하도급법이 30일 국회를 통과하자, 중소기업과 대기업들은 역시 상반된 반응을 내놓았다.
하도급법 개정안은 기술탈취에 국한했던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을 ▦부당 납품단가인하(납품단가 후려치기) ▦부당반품 ▦부당발주취소로까지 확대시킨 것이 골자. 만약 대기업이 하청중소기업에게 납품단가를 부당하게 깎거나, 납품된 물품을 부당하게 물리거나, 발주했던 계약을 부당하게 취소시켜 손해를 입혔다면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물어주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양찬회 중소기업중앙회 동반성장실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야말로 대기업들의 부당 하도급거래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밝혔다. 박치영 중소기업청 대변인도 "단가 후려치기야 말로 중소기업인들이 가장 큰 고통을 느꼈던 하도급상의 문제였다"라며 "앞으로 중소기업들이 납품수지를 맞추기 위해 고민할 일이 줄게 될 것만으로도 진일보한 개정안"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김동욱 한국경영자총협회 본부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남발로 산업계 전반에 혼란이 올 것"이라고 말했고, 이상호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정책팀장은 "소송대응력이 뛰어난 대기업보다 오히려 중소기업에게 불리한 법안"이라며 "단가인하에 대한 부담을 가진 대기업들이 국내 중소기업들보다 해외업체로 거래선을 변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힘없는 중소기업을 대신해 중소기업협동조합이 원청업체를 상대로 납품단가 협의에 나설 수 있도록 한 것도 마찬가지. 전경련 관계자는 "단가협의에 제3자가 간여하는 건 옳지 않다. 납품단가 협의권을 중기협동조합에 위임하는 건 중소기업 카르텔이 형성된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중기청 관계자는 "하청중소기업이 어떻게 원청회사를 상대로 대등한 협상을 하겠나. 어디까지나 중소기업에 협상력을 주는 제도이며 이는 카르텔이 아닌 연대의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편 정년연장법이 통과된 데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망라해 기업 대부분이 우려 입장을 피력했다. 임금피크제 같은 인건비상승 보완장치를 두지 않고 정년만 60세로 연장 의무화하면 기업들이 감당하기 어려우며, 그 피해는 특히 자금력과 고용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에 집중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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