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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안철수를 모르겠다

입력
2013.04.3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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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의원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진보인가 보수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중도개혁주의자인가, 온건보수주의자인가. 안철수는 자기 정체성을 그리 강렬히 주장한 적이 없다. 대선 전 방송에 출연해 "나는 상식파"라고 말한 게 거의 유일한 대답이다. 정치적 성향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할 지 모른다. 장삼이사(張三李四)라면 모르겠으나 국가를 경영할 생각을 가진 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국가 지도자의 이념적 성향은 나라의 앞길을 가늠하게 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대권을 꿈꾸는 사람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안철수의 정치적 지향성이 뚜렷하지 않다 보니 저마다 자신이 보고 싶은 이미지를 그에게 투사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보수층은 건전한 보수로 해석해 덜 위험하다고 여기고, 진보세력은 든든한 원군이라며 착각하기도 한다.

안철수의 모호함은 성향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콘텐츠의 부족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새 정치'에 대해 "낡은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나아가 "서민과 중산층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는 것, 민생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말이야 백번천번 옳으나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다. 새 정치를 구호로 내걸고 출마해 대선을 치르고, 한동안 자숙과 은둔의 시간을 보냈는데도 아직도 밑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여전히 뜬구름 잡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안철수 열기는 예전 같지 않다. 이전과 같은 열광적인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 적잖은 유권자들을 실망시켰다.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어정쩡하게 물러난 것도 그렇고, 문재인 후보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은 거나 대선 당일 투표를 마치자 마자 서둘러 출국한 것도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보궐선거 출마 과정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야권과 진보진영 일각의 반대에도 노회찬 의원이 낙마한 자리를 꿰찼을 때 비판론이 꽤 높았다. 가시밭길을 가겠다면서 쉬운 정치를 하려는 것으로 비쳤다.

그럼에도 안철수는 기성 정치인을 제치고 아직도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정치권이 구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 들러리라는 비난을 받고 있고, 민주통합당은 아예 존재감 자체가 없다. 여야를 통틀어 차기 대통령 감으로 꼽을 만한 인물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기존 정당은 무능하고 인물조차 변변하지 않으니 그나마 안철수에게 눈길이 가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최근 조사를 보면 안철수가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답변이 53.7%에 달했다. 신당 등장 시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는 안철수 신당이 30.9%로 가장 높았다. 당사자는 아직 신당에 대해 운도 떼지 않았는데 이런 결과가 나온 걸 보면 새 정치에 대한 열망과 안철수에 대한 기대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안철수는 이제 본격적인 시험 무대에 서게 됐다. 정치권 바깥에서 정치를 비판하던 입장에 있다 현실 정치권으로 들어서면 기존 정치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낡은 정치, 구태 정치와는 차원이 다른 새 정치 구상을 현실화하는 게 쉬울 리 없다. 무소속 의원은 의정활동의 기본인 입법활동조차 여의치 않다. 하지만 그런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정치적 능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 이슈와 현안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내야 한다. 우리 현실에서 '중도'란 어중간한 회색인의 이미지로 비쳐진다. 자칫 회색지대의 늪에 빠져 양쪽으로부터 공격 당하거나 외면당할 가능성이 크다. 애매한 화법에서 탈피해 자신의 생각과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그 것을 기반으로 해서 새 정치를 함께 할 정치인들을 조직하고 집단화, 세력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철수가 차기 대권주자로서 입지를 다져나갈지, 아니면 국회의원 300명 중의 1명으로 그칠 지는 전적으로 그에게 달려있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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