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투자활성화를 위해 '대기업 손톱 밑 가시도 뽑는다'고 할 때, 재계의 관심은 대기업들의 해묵은 몇몇 숙제들이 이번 기회에 해결될지 여부에 쏠려 있었다. 특히 내달 1일 정부가 발표할 기업투자활성화 대책에는 수도권 입지규제완화가 포함될 것으로 전해지면서, 장기 표류하고 있는 일부 건축 프로젝트들이 마침내 규제의 올가미를 벗게 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부풀기도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서울 성수동 건립을 추진 중인 110층짜리 뚝섬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대한항공이 서울 송현동에 짓겠다고 발표한 7성급 호텔이 그 대표적인 예다.
현대차그룹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 삼표래미콘 공장 부지(2만7,830㎡)에 지하 8층, 지상 110층 규모의 GBC를 짓겠다고 발표한 것은 지난 2007년. 글로벌 완성차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자동차산업 마케팅과 연구개발(R&D) 허브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인근 지역이 뉴타운 지구로 지정되는 등 순항하는 듯했던 이 사업은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지난해 4월 국토해양부가 주거ㆍ상업 등 용도변경을 쉽게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국토계획법을 개정하자 서울시가 초고층 빌딩의 무분별한 난립을 막는 자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서 제동을 건 것.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한강변에 35층 이상 초고층 건물의 신축은 제한된다.
여기에다 공공녹지 사유화 등에 대한 비판까지 겹치자 공사를 맡은 현대건설은 일단 작년 9월 관련 태스크포스(TF)를 해체한 상태. 그렇다고 현대차가 이 프로젝트를 포기한 건 아니며, 서울시와 계속 협의하는 중이다.
대한항공의 7성급 호텔은 옛 주한미국대사관저 부지에 짓는 프로젝트다. 관광객들이 밀집한 도심에 최고급 호텔을 짓는다는 구상인데, 학교반경 500m 이내에는 관광호텔을 신ㆍ증축할 수 없다는 법 규정이 가로막고 있다. 인근에 풍문여고 등 학교가 있기 때문. 대한항공측은 "학생교육을 저해하는 러브호텔을 짓는 게 아니다. 단순히 관광호텔을 짓는 것도 아니고 다목적 공연장, 갤러리 등이 어우러진 문화 센터이자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를 짓는 것"이라는 입장. 정부도 어느 정도는 그 취지를 받아들였지만, 서울시가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프로젝트는 내달 1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정부가 발표할 규제완화대상에서는 빠지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이와 관련, 정은보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29일 "현대차의 110층짜리 센터와 대한항공의 7성급 호텔 건립 프로젝트 재개를 위한 규제 완화는 (기업투자 활성화) 대책에 없다"고 밝혔다. 수도권 등 특정지역에 대한 규제 완화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게 이유.
그러다 보니 다른 대기업들도 기대가 무산되는 분위기다. LG전자의 경우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R&D센터 건립을 추진 중인데 서울시와 협상 과정에서 당초 계획(23만 192㎡)보다 절반 가량인 13만3,588㎡ 규모로 줄어든 상태다. 추가입주 때 참여할 수는 있지만 이미 분양 받은 지역과는 떨어져 있어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선 이명박 정부 때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잠실 제2롯데월드를 허가해준 것처럼, 현 정부도 대기업들의 오랜 민원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도 이 부분을 고심했지만 ▦특정기업에 대한 특혜시비가 나올 수 있는데다 ▦현실적으로 중앙정부보다는 서울시가 풀어야 할 부분이 많아, 일단 이번 대책에서는 제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재계관계자는 "수도권입지 제한규제가 완화돼야 기업들이 R&D센터를 수도권에 세워 우수인재를 유치할 수 있다"며 "이번엔 어렵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막힌 물꼬를 풀어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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