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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민족담론 공세에 취약한 우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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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민족담론 공세에 취약한 우리사회

입력
2013.04.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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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유독 '민족'이라는 단어를 자주 애용한다. 최근 국제해킹조직 '어나니머스'로부터 해킹당한 후 유명해진 북한의 선전 웹사이트 이름이 바로 '우리민족끼리' 이다.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은 북한 핵을 "민족공동의 자산으로 떠받들어야" 한다고 18일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개성공단을 담당하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은 27일 개성공단을 유일하게 남은 민족공동협력 사업이라고 그 의의를 강조했다.

사실 우리도 '민족'이라는 단어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해 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1993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면서 민족을 강조했다. 또한 현재 불온시 되는 '우리민족끼리'라는 단어도 우리가 2000년 북한과 합의한 6ㆍ15공동선언문 제1항에 이미 들어 있었다.

민족이라는 단어가 남한에서도 신성시되는 이유는 우리가 일제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동원한 담론이 바로 민족담론이었기 때문이다. 단재 신채호는 1908년 자신의 '독사신론'에서 유교적 역사서술 대신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를 토대로 새로운 민족 중심의 역사서술을 강조했다. 비록 일본이 국가와 영토를 강탈했을 때조차 단군의 혈통을 이어받은 한민족은 변함없이 유지되었음을 그는 암시했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바로 신채호 류의 강력한 저항민족주의 아래 이루어졌고, 저항민족주의에 입각한 역사교육은 우리가 일제 식민지하에서 겪은 정신적 상처를 극복하고 민족적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해방이후 지금까지 역대 정권에서 강력하게 실시되었다.

문제는 혈통에 기반한 폐쇄적 저항민족주의 전통 때문에 북한의 맹렬한 민족담론 공세에 우리가 취약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북한은 해방직후 친일파 청산을 철저하게 했으나 남한은 그렇지 못했고, 그래서 민족의 정통성은 비록 북한이 남한보다 못살더라도 북한에 있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 일각에 팽배해 있다. 그러나 친일파 청산 담론은 어디까지나 북한의 선전공세일 뿐 객관적인 근거가 허약하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에서 밝혀졌다. 북한은 공산화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세력들을 친일파라는 낙인을 찍어 숙청했을 뿐 실제로 국가건설에 도움이 된다면 친일파라도 활용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강력한 저항민족주의 교육은 자연히 반외세를 강조하게 되는데, 이것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 북한의 반미민족주의와 친화성을 갖게 되었다. 반외세를 강조하는 저항민족주의 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80년의 '광주'와 그 이후의 군부독재시대를 거치면서 반미정서를 갖게 되었고 이러한 정서는 북한의 반미민족주의와 친화성을 갖게 된 것이다. 반외세 정서를 공통 기반으로 한 북한에 대한 정서적 친화성은 우리로 하여금 북한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을 방해하고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북한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지구상 최악의 전체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반외세 민족공조' 선동에 말려 이 사실을 자주 잊고 북한을 대하는 우를 범하기 쉽게 된다.

세 번째 문제는 북한이 말하는 우리 민족은 더 이상 '한민족'이 아니라 '김일성민족'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94년부터 김일성민족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고, 95년부터 노동신문 등 선전매체에서도 공개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순진한 남한 사람들만 북한을 같은 피를 나눈 형제로 생각할 뿐 북한은 이미 주체사상을 기본으로 한 김일성민족주의의 나라인 것이다.

북한의 민족담론 공세에 우리가 취약하다고 해서 민족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 주변에는 중국 민족주의, 일본 민족주의의 파고도 높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혈통을 중시하는 폐쇄적 저항민족주의만 추구하는 것은 이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저항민족주의는 지금까지 순기능을 해 왔다하더라도 혈통을 중시하는 객관적, 원초적 민족주의 성격 때문에 북한의 선전공세에 취약하기도 하거니와 이러한 폐쇄적 민족주의는 언제든지 공세적 민족주의로 변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개인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민족주의를 토대로 한민족 공동체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철순 부산대 정치외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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