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싸이의 '젠틀맨'이 메가히트를 기록 중이다. 유튜브에 공개된 젠틀맨 뮤직비디오에 현기증이 날 정도로 이어지는 댓글이나, 끊임 없이 올라오는 노래와 춤에 대한 '커버'(팬들이 그대로 따라하는 것), 그리고 내용을 바꿔 만든 패러디 동영상을 보면 싸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또 해냈는지 실감하게 된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는 통념, 1회용 반짝 스타로 끝날지 모른다는 우려를 단박에 날려버리고, 범 지구적인 '싸이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우연하게(?) 뜬 강남스타일과 달리 젠틀맨은 전편의 성공 공식을 철저히 분석하고 적용해 '기획상품'으로 만들어 대박을 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박근혜 대통령은 싸이를 창조경제의 모범 사례로 들었다. 하지만 창조경제가 싸이 같은 인물이 끊임 없이 쏟아져 나오게 하는 경제 분야의 새로운 시스템이라면, 싸이는 이를 구현하는 창조 경영인이라고 봐야 더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면 창조경영, 혹은 경영에서의 창조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새롭고 색다른 예술적 창조, 혹은 검증ㆍ반복 가능한 과학(기술)적 창조 등을 돈 되는 제품ㆍ서비스와 합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창조적 발상의 전환 뿐만 아니라 수익성까지 겸비해야 비로소 창조 경영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싸이가 바로 그런 경우다.
팝음악의 주류 시장인 미국에서도 통한 싸이 경영의 핵심 코드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창조적 실험이다. 사실 미국 등 서구인에게 동아시아인은 점잖고 예의 바르며, 부지런히 일만 하는 존재로 이미지가 각인돼 있다. 싸이의 미국인 매니저인 스쿠터 브라운이 "싸이로 인해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는 말은 그래서 적절하다. 그런데 미국 서부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말춤을 못 생긴 아시아인이 기가 막히게 추고, 이번에는 기발하고 짓궂은 아이디어로 슬랩스틱 코미디(일종의 몸 개그)에 가까운 행동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색다르고 재미있는가. 구글 CEO인 래리 페이지도 "재미와 예술을 결합해 문화적 실험을 하는 것 같다" 고 평했지만, 싸이의 최대 미덕은 바로 그 실험을 통해 누구도 해내지 못한, 재미 있고 팔리는 '상품'을 제조했다는 점이다.
춤과 노래, 아이디어의 3박자가 결합된 뮤직비디오를 보면 싸이가 가수 겸 댄서인지, 아니면 코미디언인지 헷갈릴 때가 적지 않다. 미국에도 춤 잘 추는 뮤지션이 있고, 노래 잘하는 코미디언도 있지만, 이 모두를 아우르는 사람은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는 어쩌면 가장 개성이 강한 종합 엔터테이너인 셈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기존의 휴대폰에 인터넷, 터치패드 등을 융합해 스마트폰이라는 거대한 창조를 이뤘듯, 싸이도 기존 장르의 벽을 허물어 '싸이스러움'이라는 새로운 뮤직비디오 장르, 참신한 융합을 만들고 있다면 과찬일까.
싸이의 창조경영은 어쩌면 벤처나 중소기업만이 배워야 할 사안은 아니다. 우리 대기업들도 반성과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금 대기업들은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지속적인 혁신으로 애플을 넘어서고 있는 삼성을 제외하고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내수부진, 엔저(低) 파고 속에 움츠러들고 있다. 대기업 관계자는 최근 "이명박정부 때의 녹색성장은 태양광, 2차 전지 등 뭔가 투자할 대상이 분명했는데, 현 정부의 창조경제는 뜻을 알 수도 없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누구보다도창조경영에 앞장서야 할 대기업이 할 소리가 아니다.
한국경제는 현재 성장의 벽에 부딪쳐 있다. 때문에 벤처ㆍ중소기업을 성장의 새로운 축으로 키우면서,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활력을 유지해 더욱 세계로 뻗어나가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그럼에도 지금 대기업들은 싸이만큼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상당수는 일감 몰아주기 근절 등 경제민주화 요구에 반발하면서 편한 내수시장에서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지 않느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장을 열광시켜 지구인의 소비 패턴을 바꾸고 기존의 문화를 뒤집어놓을 만한 창조적 제품을 내놓고 있는지, 그러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지 대기업 스스로 물어야 할 때이다.
박진용 산업부 차장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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