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용필이 내 인생에 처음 나타난 시기를 비교적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1981년,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해에는 '고추잠자리'가 대히트였다. 우리집이 마침 칼라TV를 들인 때이기도 했다. 나는 알록달록한 화면을 통해 '가수왕' 조용필의 노래를 들었고, 동네 언니오빠들의 꽁무니에 붙어 다니며 '고추잠자리'를 따라 불렀다.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 싶지… 그때 나는 엄마 곁에 있지 못했다. 노래를 부르며 엄마를 생각하곤 했다.
오늘은 조용필의 새 노래 '바운스'와 'Hello'를 듣고 있다. 가왕의 화려한 컴백. 며칠 전 술자리에서 함께 어울린 한 뮤지션은 역시나 사운드가 너무 훌륭해서 혀를 내두르게 된다고 했다. '그대가 돌아서면 두 눈이 마주칠까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두근대 들릴까봐 겁나…' 음. 나로서는, 노랫말이 너무 파릇파릇하여 마구 좋아하기에는 좀 겸언쩍다. '고추잠자리'를 따라하던 여덟 살의 나는 어느 새 마흔이 되었다. 바운스 바운스 하는 심장에 무작정 황홀해지던 시간으로 돌아가지지는 않는 것이다.
아마 내가 조용필의 목소리로 느끼고 싶었던 건 쿵쿵 겁 없이 뛰는 새파란 청춘의 심장보다는 젊은 에너지를 간직한 채 젊음에 갇히지 않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충분히 젊더라도 육십 대의 마음에서 나오는 노래.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고추잠자리'가 삼십 대 조용필의 마음일 수도 있고 여덟 살 꼬마의 마음일 수도 있었던 것처럼.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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