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코 레타(46)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내각이 28일 로마 대통령궁에서 취임선서를 하면서 출범을 알렸다. 그러나 레타 총리가 선서를 하는 동안 1㎞ 떨어진 총리 집무실 밖에서 괴한이 총기를 발사, 3명이 부상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2월 총선 이후 두 달 간의 진통 끝에 구성된 내각은 제1당인 중도좌파 민주당,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자유국민당, 마리오 몬티 전 총리의 중도 시민선택당 등 3개당이 손잡은 좌우동거형 연립정부다. 내각은 이날 취임선서에 이어 29일 의회에서 정책방향을 설명하고 30일 상하원의 신임투표를 거쳐 정식 출범한다.
민주당 부당수 출신으로 친유럽ㆍ온건 성향인 레타는 앞서 27일 민주당 출신 인사 9명, 자유국민당 5명, 시민선택당 3명으로 구성된 내각 명단을 발표했다. 내각 2인자인 부총리 겸 내무장관에는 안젤리노 알파노 자유국민당 사무총장이 선임됐다. 재무장관은 파브리지오 사코마니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 외무장관은 엠마 보니노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이 맡았다.
새 내각의 여성장관은 7명으로 역대 이탈리아 정부 중 가장 많다. 이중 세실 키옌지 차별철폐부 장관은 콩고 출신으로 첫 유색인 장관이다. 여성 외무장관도 처음이다. 총리를 비롯해 내각 연령대는 크게 낮아졌다. 지앙프랑코 파스키노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젊지만 경험이 풍부한 인사들이 요직에 등용됐다"며 "실용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레타가 내각 구성을 위해 베를루스코니와 이틀 동안 협상했다고 보도했다. 민주당은 당초 자유국민당과의 연정을 거부하는 입장이었다. FT는 미성년자 성매매, 탈세 등 4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 베를루스코니가 법무장관직을 자유국민당에 달라고 요구했지만 관철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법무장관은 몬티 내각의 내무장관으로 부패 척결을 이끈 안나 마리아 칸셀리에리가 맡았다.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제3당 오성운동은 연정 참여 거부로 최대 야당이 됐다. 베페 그릴로 오성운동 대표는 "그야말로 붕가붕가 잔치"라며 연정을 평가절하했다. 붕가붕가는 베를루스코니가 총리 재임 중 자택에서 벌인 것으로 알려진 난교(亂交)파티를 뜻한다.
레타 내각은 일자리 확충, 빈곤 타파, 중소기업 활성화 등 경기부양책을 신속하게 시행할 방침이다. 레타는 이를 위해 EU에 재정적자 감축 목표 완화를 요청하기로 했다. 재계를 대변하는 이탈리아공업총연합은 "새 내각이 이탈리아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명했다. 내각이 정파 간 갈등으로 단명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몬티 내각이 도입한 재산세가 첫 난관이다. 베를루스코니는 총선 당시 재산세를 폐지하고 지난해 거둔 40억유로(5조7,795억원)를 환급하겠다고 공약했었다.
취임선서 당시 총리 집무실 밖에서는 양복과 넥타이 차림의 40대 남성이 권총을 발사해 의회 경찰 2명과 행인 1명이 다쳤다. 경찰은 총격 직후 이 남자를 체포했다. 이 남자는 범죄 경력은 없으며 실업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탈리아 내무부는 단순하고 우발적인 사건이며 정치적 의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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