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을 지키기 위해 숨어 있기까지 했는데….”
27일 오후 경기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에 도착한 개성공단 입주기업직원들의 눈에는 아쉬움이 역력했다. 정부의 전원 철수결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내려오기는 했지만, 아무런 기약 없이 일터를 버리고 왔다는 생각에 누구 하나 고개를 들지 못했다.
문창섭 삼덕통상 대표는 “이번에 나오면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고, 남한으로 가도 실업자가 될 지 몰라 끝까지 공장을 지키려고 한 근로자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귀환을 앞두고 점검을 해보니 인원수가 맞지 않아 북측 관리자들까지 나서 숨바꼭질하듯 이들을 찾으러 다녔다고 한다.
이날 철수한 남측 인원은 모두 126명. 오후2시40분께 11명이 먼저 귀환했고, 두 시간 뒤 115명이 차량 59대에 나눠 타고 CIQ를 통과했다. 29일 한국전력공사, 한국수자원공사, 개성공단관리위원회 등 남은 체류인원 50명이 마지막으로 돌아오면 개성공단에는 가동 8년4개월 만에 단 한 명의 우리 국민도 남지 않게 된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당초 이날 오전까지도 입주기업 잔류인원의 전원 철수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개성에 남겠다’는 기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성에 전 재산은 물론 인생까지 건 이들로선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의견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아 협회는 오전 한때 잔류냐 철수냐를 각 기업의 개별 결정에 맡긴다는 입장을 정하기도 했지만, 결국 정부결정을 존중해 전원귀환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귀환 길은 피난 행렬을 방불케 했다. 당초 계획한 차량 이용 대수가 75대에서 63대로 줄면서 최대한 많은 물품을 싣고 오느라 승용차 안 좌석은 물론, 지붕 위, 보닛 등에도 짐이 가득했다. 어떤 차량은 짐이 차창 유리까지 뒤덮어 시야만 겨우 확보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귀환 행렬을 지켜보던 한 관계자는 “불과 7,8년 전 평양도 갈 수 있었던 세상이었는데 피난짐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이번 사태가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역사의 아픔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입주업체 직원들이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들을 너무 많이 가져오다 보니 북한의 허가 절차도 까다로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섬유봉제업체 T사 관계자는 “차량 무게가 적재 규정을 초과해 북측이 반출 물품에 대한 심사를 엄격하게 진행했다”고 말했다. 북측 당국은 신고된 것보다 나가는 물량이 많다며 일부 직원들에게는 벌금도 요구했다고 한다.
CIQ에서 마중 나온 입주업체 관계자 및 가족들과 상봉하자 눈물을 훔치는 근로자들도 적지 않았다. 스포츠의류업체 임원 이모씨는 “어제 한 숨도 못 잤다. 공장을 비워놓고 나오니 울 것 같았다”고 했다. 길게는 북측이 입경 제한 조치를 내린 3일 훨씬 이전부터 개성공단에 머물러 한 달여 만에 귀환한 직원도 있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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