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처음 왔을 때 엄마는 네가 온 줄도 몰랐어.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 엄마는 너를 사랑해서 너를 지울 수 없었단다. 너를 차마 보내지 못하고 하나님께 맡길게. 엄마가 ○○이 빨리 찾으러 올게."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에 갓난 아이를 두고 간 엄마 A씨가 남긴 편지다.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당수 청소년 미혼모가 그렇듯, A씨는 임신을 하고서도 한참 동안 아이를 가진 줄 몰랐다. 임신 사실을 알고서는 차마 낙태를 할 수 없었단다. 그러나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경제적 형편 탓에 아이를 키우지 못했고, 결국 베이비박스를 떠올렸다.
베이비박스에 아이와 함께 남겨진 편지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견고한 것일 줄 알았던 모성(母性)과 부성(父性)이 편견과 가난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편지들을 스크랩해 두고 있는 이종락 목사는 "하나하나 눈물겹지 않은 사연이 없다"고 말했다.
아이를 안고 난곡 산동네 꼭대기 교회 베이비박스를 찾는 부모 중에는,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경제적 상황이 아니어서 이런 선택을 한 경우가 많다. 대개가 가정 형편이 어려운 10대 미혼모들이다. 2011년 1월 제주에 사는 열 여섯 살 B양이 낳은 아이가 들어 왔는데, B양이 객지로 돈을 벌러 가느라 옆집에 사는 집사가 아이를 데리고 왔다. 아이는 비행기를 탈 수 없어 집사와 함께 배를 타고 16시간 만에 서울로 왔다.
고등학교 3학년인 엄마 C씨는 "엄마가 직장에 나가시고 집안형편이 좋지 않아 아이를 볼 여건이 안 됩니다"라며 "아이를 낳고도 책임을 못지는 못난 엄마가 되었습니다"고 자책했다. "고시원에서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었어요"라는 편지도 있었다.
아이의 장애나 태생적 한계를 감당할 수 없어 베이비박스 문을 연 사례도 많다. D씨는 편지에서 "다운증후군 의심 판명을 받았음에도 못난 부모를 만나 보살핌을 받지 못합니다"라고 했다. 이 달 중순엔 뇌수막염 때문에 보통 아이보다 머리가 세 배나 큰 아이가 들어왔다. 머리에 물이 차 두 번 수술을 했는데, 차도가 없었고 부모가 도저히 키울 수 없어 베이비박스에 들어왔다. 불륜관계에서 태어난 아이, 불법체류자를 부모로 둔 아이도 베이비박스에 남겨졌다.
배우자와 헤어진 이후 태어난 아이를 혼자 키울 수 없어 베이비박스 앞에 선 부모도 있다. 아빠 E씨는 "애 엄마가 출산 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며 "아이 셋을 나 혼자 키울 수가 없다"고 했다. 남편 폭력 때문에 이혼하고 나서 아이를 출산한 F씨는 "이혼 10개월 안에 낳은 아이라 전남편 호적에 올려야 하는데 전남편이 내 아이가 아니라고 했다"고 썼다. 외할아버지 G씨는 정신지체장애인 딸이 낳은 아이를 데려 왔다. G씨의 딸은 이웃사람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아이를 낳았고, G씨는 혼자 외손주를 키울 수 없었다.
"저는 아이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죄인입니다." "전 인간이 아니라 악마입니다." 부모들은 편지에서 이렇게 자책했다. 세상이 가할 비난을 잘 알고 있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