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여승무원 폭행 사건이 일깨우는 것

입력
2013.04.26 18:36
0 0

한 대기업 임원의 항공기 여승무원 폭행 사건이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포스코에너지 상무였던 이 임원은 결국 회사에서 보직해임된 후 사직했다. 급기야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나서 "포스코가 그간 쌓아온 국민기업으로서의 이미지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한 충격적인 일"이라고 규정하며 반성과 사과의 뜻을 밝혔다.

아주 좁게 보면 한 사람의 개인적 자질 내지 습벽의 문제로 환원될 수도 있는 사건이 왜 이렇게 큰 사회적 이슈를 만들었을까. 사건이 알려진 후 비즈니스 석에 탑승하는 '진상' 승객들의 행태 고발부터 항공기 여승무원 등 '감정 노동자'의 애환 소개까지 여러 원인 분석이 나왔지만, 핵심은 사건의 당사자가 다른 사람 아닌 대기업 상무라는 점에 있었다.

네티즌들의 댓글 한두 개를 보자. "좀 더 잘사는 것들은 좀 나을까 했는데 이건 완전 쓰레기들… 포스코 상무 해봐야 50대에 연봉 한 3억? 그래봐야 몇 년 더 버티지도 못하면서 마치 신이라도 된 듯이 유치스런 권력을 흔든다… 나머지들은 어떨까?" "돈 많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듯하군요. (비즈니스 석에 탑승해서) 발도 닦아 달라는 요구도 한다지요. 돈은 일단 많이 벌고 봐야 할 듯!!"

많은 국민들이 이 사건으로 느낀 분노의 종착지는 바로 이 점이다. 요약하면 그것은 "돈 좀 벌고 지위 좀 있는 인간들 설치는 거 못 참겠다'는 심정이다. 비즈니스 석 탔다고 이렇게 행동할 정도라면 평소 그들의 행태가 어떻겠느냐,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을 보는 속내가 뻔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한때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말한 '갑과 을의 관계'라는 표현이 유행했다. 그가 말한 '갑'은 대기업에서 공무원을 상대로 일하면서 느꼈던 관료와 공직자의 문제점을 지칭한 것이다. 기업이나 민원인을 '을'로 보는 갑이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을의 생사여탈권을 쥔 듯이 행동하고, 스스로는 무사안일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었다. 나중에 스스로 갑이 된 이명박 정부는 결국 국민인 을에 의해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로 낙인 찍히고 말았지만.

비즈니스 석 여승무원 폭행 사건을 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다르다. 대기업 임원이 갑이고, 여승무원이 을이다. 그리고 정확한 경위야 어떻든 대기업 임원이 여승무원을 폭행까지 한 것은 단지 그 한 명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 전체의 문제라고, 새로운 갑을 관계의 상징적인 표출이 이 사건이라고 사람들은 느낀다. 해당 임원 신상털기에 여론재판 우려까지 낳을 정도였던 네티즌들의 이 사건에 대한 분노는 거기서 비롯됐다,

요즘 한창 논란이 되는 경제민주화 이슈를 이 사건과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재벌 등 대기업에 쏠린 부의 편중 현상 및 사회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동네빵집으로 대표되는 중소기업이나 개인인 국민들에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경제권력을 각종 입법으로 제어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쪽에 있다. 반대쪽에서는 그런 주장은 포퓰리즘이자 한국사회에 뿌리깊은 반기업 정서의 표출일 뿐이며 결과적으로는 기업활동을 옥죄게 돼 글로벌 경쟁력은 물론 시장경제를 위협할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어려운 문제이긴 한데, 경제민주화가 뭐냐는 질문에 대한 몇몇 반대론자들의 답변에서는 그들이 '을'의 심정을 모르는구나 하는 우려가 생긴다. 한 대기업 임원은 기자의 질문에 최근 재벌 회장들이 잇달아 실형을 선고받거나 국회 증인 불출석 혐의로 구형량보다 훨씬 높은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실에 빗대 "한 마디로 기업 총수 (감옥에) 집어넣자는 거지 뭐야"라고 답했다. 대기업 연구소 사장 출신인 여당 원내대표는 "우리사회가 아무 데나 '민주화'를 갖다 붙인다"며 국회가 인기주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사회적 갑을 관계는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상당히 해소됐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적 갑을 관계는 부의 편중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오히려 구조적으로 점점 더 공고화될 것이다. 여승무원 폭행사건은 그 갑을 관계가 폭력적으로 표출되고, 국민들의 거센 저항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하종오 부국장 겸 사회부장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