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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의 관음보살은 생명의 근원 담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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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의 관음보살은 생명의 근원 담은 것"

입력
2013.04.26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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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 장을 보고 책 한 권을 쓴 사람이 있다. 한국 고미술 연구의 대가인 강우방(72) 일향 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이다. 한국미술의 모태가 삼국시대 미술에 있다고 생각해온 그는 최근 10여 년 간 고구려 벽화를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영기화생론'이라는 독특한 이론을 제시하며 고려 불화(佛畵) 속 숨겨진 상징들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이번 주 출간된 (글항아리)은 일본 교토의 다이도쿠사(大德寺)가 소장한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 속 상징과 의미를 풀이한 책이다.

강 원장은 26일 전화인터뷰에서 "이론을 정립하는 데 10년, 이 책을 쓰는 데만 꼬박 3년이 걸렸다"며 "사람들은 현실에서 본 것을 대입해 불화(佛畵)를 보려하지만, 불화의 90%는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린 것이다. 그 의미를 풀어냈다"고 말했다.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는 글자 그대로 달이 비친 물 가운데 금강보석(金剛寶石)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을 그린 그림이다. 고려의 수월관음도는 뛰어난 기량으로 불화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데, 40점 이상 제작됐다. 다이도쿠사의 소장품은 에 나오는 낙산성굴의 설화에 의거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 원장은 이 그림을 해석하며 연꽃에서 만물이 탄생한다는 요시무라 레이 교수의 연화화생론(蓮花化生論), 구름 모양에서 탄생한다는 이노우에 다다시 교수의 운기화생론(雲氣化生論)을 발전시킨 자신의 이론 '영기화생론(靈氣化生論)'을 소개한다. 강 원장은 "기가 모여 만물이 생기고, 우주에 생명력이 가득차는데, '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며 "사람들이 흔히 불화에서 국화나 구름으로 보는 무늬들은 이 보이지 않는 것을 여러 모양으로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명의 시초인 제1영기싹이 생겨나서 그것이 꼬불꼬불한 모양으로 다시 제2영기싹을 만들어내고, 점차 구체적인 생명의 형태로 자라나게 되는 것이 영기화생론의 개관이다. 강 원장은 "고구려 벽화는 영기문(생명 시초인 영기싹이 자라난 모양)이 성립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잘 나타나있다"고 설명했다. 이 이론은 2010년 8월 일본의 권위있는 학술지 에 실렸고, 수월관음도를 비롯한 동시대 다른 불상, 의복의 무늬, 도자기 등을 통해 폭 넓게 검증되고 있다.

"수월관음도에서 흔히 '국화'라고 보는 무늬는 사실 '보주(寶珠)'입니다. 텅 비어있어서 그 속에 무량한 보주가 들어있기도 하고, 생명력을 상징하는 물이 가득 차 있기도 한 만물생성의 근원이라 할 수 있지요."

이런 관점으로 수월관음도를 보면, 이 그림은 수월관음 아래에 서 있는 13명의 인물이 달밤의 신비로운 잉태의 기운과 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의 힘을 빌려 관음보살을 탄생시킨 장면으로 풀이될 수 있다.

강 원장은 '영기화생론'의 이론을 삼국, 고려시대 불화에 대입한 책을 10여 권 이상 써 나갈 생각이다. "고구려벽화를 올바로 알면, 한국미술뿐만 아니고 일본, 중국미술의 비밀이 다 풀린다. 앞으로 일본, 중국이 고미술을 배우러 한국에 와야할 것"이라고 말하는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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