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24 재보선에서 참패한 민주통합당이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민주당 약세 지역에서 치러진 선거이긴 했지만, 국회의원뿐 아니라 기초단체장과 광역ㆍ기초의원 선거에서도 맥을 못 추고 전패하자 25일 당 안팎에서는 "제1야당의 존재감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한탄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번 재보선에서 받은 당장의 성적표 때문만은 아니다. 민주당 김동철 의원은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총선ㆍ대선 패배 이후 심화돼온 위기를 이번에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갤럽의 4월 3주차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18%까지 떨어져 지난해 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대선 패배 이후 5개월여 동안 계파 갈등과 책임 공방에 갇혀 좀체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무기력감이 더해지면서 지지자들의 '실망 매물'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날 "민주당 역사 이래 최대 위기"(양승조 의원)라는 말도 나왔다.
핵심 지지기반 붕괴 우려
이런 위기감의 근저에는 당의 지지기반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우선 민주당의 핵심 지역 기반인 호남 여론이 심상찮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민주당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누군가 불만 지르면 들불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호남 민심이 그간 민주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지만, 두 번의 대선에서 패하는 등 수년간 지리멸렬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인내심의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호남 지역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이 10%포인트 이상 차이로 민주당을 앞서는 것도 이런 폭풍전야의 민심을 반영하는 셈이다.
호남뿐 아니다. 민주당의 세대적 지지기반인 2030세대의 지지율도 급락하고 있다. 4월 3주차 갤럽 조사에서 야권 성향이 가장 강한 30대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21%로 새누리당(31%)에 10%포인트 차이로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대선에서 30대의 66.5%(출구조사 기준)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지만, 이들 대다수가 민주당을 외면하며 흩어지는 양상이다. 민주당의 지역적, 세대적 양대 지지 축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당 정체성의 구조적 위기
지지기반이 붕괴된 것은 다름 아닌 민주당의 정체성 자체가 구조적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란 진단이 나온다. 1987년 민주화 이래 민주당은 호남이란 지역적 기반을 토대로 비호남권의 민주∙개혁세력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전국정당과 수권정당화를 시도해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대선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였다. 한마디로 '호남+친노ㆍ486'이 민주당 정체성의 핵심 방정식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결합이 참여정부 집권 시기부터 끊임없이 불협화음을 빚어 수년간 골 깊은 계파 갈등으로 이어졌다. 호남 정치세력이나 친노ㆍ486세력이 당의 노선과 정치문화를 두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서로 발전하기보다는 양쪽 모두 좁은 계파의 틀에 갇혀 제 살 갉아먹기 식 권력 투쟁만 거듭해왔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 소장은 "호남 정치세력은 호남 지역에서의 민주당 일당 독점구조에 자족하면서 DJ 이후 유력 정치인을 거의 키워내지 못했다"며 "민주화운동 세력도 과거 경력에 의존하며 정치 투쟁에만 주력할 뿐 민생 문제 해법을 제시하는 대안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끊임없이 '좌클릭, 우클릭'의 노선 논쟁에 휘말리고 지금까지도 대선 패배 책임을 둘러싼 공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 같은 계파 갈등과 연관돼 있다. 이 같은 반목이 거듭되면서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는 것이다.
정치적 리더의 부재
정치적 리더의 부재도 민주당의 위기를 부채질해왔다. 과거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양대 세력의 결합을 이끄는 중심 축이었지만, DJ가 물러난 이후 당을 책임진 인사들은 당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고 계파 수장의 역할을 하는데 그쳤다. 민주당이 지난 10년 동안 지도부만 20번 이상 교체한 것도 이런 리더 부재의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의 한 관계자는 "고질적 계파 갈등이 거물급 정치적 지도자를 키우지 못하게 했고, 리더의 부재는 또다시 계파 갈등을 고착화하는 악순환을 거듭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의 구조적인 위기를 타개할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정당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내부에서 계속 인물을 키워내고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정책을 생산해 국정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또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통해 당원을 늘리는 등 당의 기본 체질을 튼튼하게 만드는 정석 외에 다른 방법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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