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우리 경제의 1분기 성적표를 받아 든 한국은행과 정부의 표정은 확연히 갈렸다. 수치만 보면 작년 4분기 대비 0.9%의 성장률은 한은의 완승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한은은 내심 '그것 봐라'는 의기양양한 표정인 반면, 정부는 머쓱한 입장이 됐다. 하지만 향후 경기 전망에 대해선 여전히 의견이 엇갈린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금리 인하를 놓고 벌였던 정부와 한은의 기싸움이 이제 2라운드 '경기전망 논쟁'으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김중수 한은 총재가 이달 기준금리 결정 후 내놨던 "물컵에 반쯤 물이 있다. 한은과 정부의 인식은 반이 찼다고 보느냐, 반이 비었다고 보느냐다"라는 비유는 현재 정부와 한은의 입장차를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0.9% 성장률을 물로 본다면 한은은 '반이나 차있고 앞으로 늘어날 것'에, 정부는 '반 밖에 없고 앞으로 줄어들 것'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실제 김영배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이날 성장률 분석결과를 설명하면서 대체로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투자 증가세가 이어질 걸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위례 신도시 등 예정된 대규모 건설 사업에다 정부의 부동산대책, 재정 조기집행 가속화 등을 감안하면 2분기부터 성장에 플러스 효과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3.2% 증가한 수출이 체감도와는 다르다는 지적에는 "개별지표와 국내총생산(GDP)은 포괄범위가 달라 차이가 난다"는 말로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한은 관계자는 "미래를 예단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1분기 지표로만 보면 회복세 지속이라는 한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은 내부는 금리 동결 등 그간 취해 온 정책기조도 바꿀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다.
이에 반해 정부는 '1분기 실적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현오석 부총리는 한은이 성장률을 발표하던 시각,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정부가 당장 조치를 하지 않으면 자칫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이 꺼질 수도 있다"고까지 위기감을 강조했다.
거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 관계자는 "0.9% 성장률에는 전분기 성적이 저조했던 기저효과가 상당부분 반영돼 통계적 착시가 있으며, 1.5%의 전년 동기대비 성장률을 봐도 여전히 우리 경제의 절대적 성장세가 매우 낮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김중수 총재가 "8분기 연속 0%대 성장률을 문제 삼는 건 우리 경제 체질에 비춰 지나친 우려"라고 지적한 데 대해서도 "그렇다고 0%대의 낮은 성장률을 당연한 듯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올해 경기흐름을 '상저하고(上低下高)'로 보는 한은과 달리, 정부는 자칫 상저하고를 예상했다가 오히려 상저하추(上低下墜)로 끝난 지난해 흐름이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 등의 경기회복세나 추경 효과 등에도 불구, 엔저공세 강화 등 불안 요인이 여전히 크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금리인하와 관련해서도 "경기 활성화를 위한 모든 수단이 총동원돼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불확실성이 크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면서도 정부의 지나친 비관론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경제연구부문장은 "올해 성장률이 정부 전망대로 2.3%가 되려면 2~4분기에 0.6~0.7% 성장률이 나와야 하는데, 세계경기 회복세 등을 감안하면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 한상완 상무는 "유럽 재정위기와 엔저 여파 등 불확실성은 많지만 작년과 올해 경기 상황은 다른 면이 많다"고 평가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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