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70여명이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금융계좌나 페이퍼컴퍼니(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법인)를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23일(현지시간) 밝혔다. ICIJ는 계좌 개설자의 이름과 주소지 등을 근거로 한국인을 분류해낸 것으로 알려졌다.
ICIJ에서 조세피난처 실태 조사를 이끌고 있는 제러드 라일 기자는 "한 사람이 복수의 계좌를 보유한 경우도 있다"며 "유명인사가 명단에 포함됐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상 조세피난처의 금융계좌는 비공개를 전제로 개설되기 때문에 70여명 중 유명 인사들이 다수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조세당국 관계자는 말했다. 한국인 명단에 대한 분석작업이 본격화하지 않아 명단이 공개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ICIJ는 한국 언론과 공동 검증작업을 벌여 명단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세청은 한국인 명단이 공개되면 계좌 보유자와 자금의 위법성 여부를 철저히 추적ㆍ검증한다는 방침이어서 큰 파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금까지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거나 지분을 보유한 사실이 확인된 인사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와 아들 건호씨가 대표적이다. 2009년 검찰조사에서 연씨 이름으로 된 해외 창업투자회사인 타나도인베스트먼트에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의 500만달러가 입금된 뒤 다시 건호씨가 대주주로 있는 엘리쉬&파트너스로 거액이 송금된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인 명단이 공개되면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을 초래한 이 사건이 4년 만에 새롭게 조명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경우 해외자금 유치기관인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대풍그룹)이 버진아일랜드에 계좌를 개설하거나 법인을 설립해 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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