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항의하는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위협"이라고 표현하고, 침략전쟁 자체를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등 연일 무모한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세계 3위 경제대국을 이끄는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그의 행보는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 외교ㆍ안보 지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세력 결집을 위한 아베의 정치적 노림수라고 보고 있다.
아베 총리는 2006년 총리 시절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등 과격한 발언으로 외교적 충돌을 자초하다 임기 1년 만에 퇴진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일본 사회가 전반적으로 우경화하면서 경험있는 우익 정치인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아베의 존재감은 급부상했다.
지난해 12월 취임 초기 정치적 기반이 취약했던 아베 총리는 주변국과의 불화를 일으킬 수 있는 발언을 자제한 채 대담한 금융완화와 물가목표 2%를 앞세운 아베노믹스 등 강력한 경제정책을 추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로 인해 지지율이 70%를 웃도는 등 탄탄한 기반을 다졌다고 판단한 그는 7월 참의원 선거 이후로 미뤘던 헌법개정 카드를 조기 공론화하고 있다. 선거 공약으로 헌법 96조 개정을 명시해 헌법개정 발의 요건인 의원 3분의 2 확보는 물론 국민투표에서도 유리한 분위기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베 총리의 도발에는 패전의 멍에를 쓴 가족사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라고 말한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는 과거 전범으로 내몰렸던 우익인사다. 평화헌법 개정, 자학적 역사관 수정 등은 기시 전 총리가 시도했다가 실패한 패전의 기억들이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교수는 "아베 총리에게는 외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일본이 벌인 전쟁을 모두 부정하고 싶은 본심과 외교 마찰을 줄이고 경제에만 집중해 성공한 총리로 남고 싶은 생각이 혼재해 있다"며 "최근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본심이 더 드러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와 우익세력의 이런 행보는 결국 외교적 고립만을 자초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고노담화의 재검토 등 아베의 극우행보를 자제할 것을 경고했다. 이달 중 열릴 예정이던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취소됨으로써 북한 핵 미사일 위협에 대한 관련국과의 공조도 깨지고 있다. 우익 정치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마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정치인은 외교적 태도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우려할 정도다.
일본 전문가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아베 총리가 지지도가 급상승하면서 당내 라이벌이나 야당 경쟁자의 존재감이 약해지자 과감한 발언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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