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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살 가르는 근육의 떨림 스릴이 튄다, 심장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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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살 가르는 근육의 떨림 스릴이 튄다, 심장이 뛴다

입력
2013.04.2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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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치뼈와 수평한 높이의 수면에 노의 날을 넣는다. 당긴다. 엄지발가락 끝에서 시작된 힘이 종아리와 무릎 관절, 허벅지를 타고 올라 복근과 어깨, 팔뚝을 통해 노를 부여잡은 손아귀에 전해진다. 등 뒤로 밀린 노의 회전면과 수면이 분리되는 순간, 힘은 풀어져 속도가 된다. 뾰족한 뱃머리 아래에 쐐기 무늬 파문이 인다.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한 노는 방향을 바꾸어 반대편 수면에 날이 닿는다. 당긴다. 빨라진다. 근육의 움직임이 물살의 리듬에 반응한다. 몸이 척추동물 본연의 호흡과 심장박동을 되찾는다. 다시, 당긴다.

카누는 원시적인 형태의 배다. 선체의 등뼈 역할을 하는 용골이나, 방향을 잡는 장치인 키가 없는 단순한 구조다. 동력원은 인간의 근육. 약 80만년 전 호모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아시아로 이동할 때 배를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돌도끼로 가지를 쳐 내고 속을 파 물 위에 띄운 배가 지금의 카누와 닮았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들의 동굴 벽화 속에도 카누와 비슷한 배가 그려져 있다. 지금과는 형태와 위치가 달랐을 대륙과 바다를 건너는 선조들의 도구가 스포츠의 수단이 된 건, 19세기 중반 북아메리카 대륙 인디언의 카누가 유럽인들의 눈에 띄면서부터다.

수상 스포츠로서 카누를 일컫는 용어는 '패들(paddleㆍ노) 스포츠'다. 노를 이용해 배를 움직이는 카누, 카약, 인플래터블(공기주입식 보트) 등을 통칭한다. 카약과 인플래터블을 아울러 카누로 부르기도 한다. 흔히 카누로 분류되는 배는 캐나다 인디언의 배를 기본으로 한 것이다. 배에 덮개가 없고 한쪽에만 날이 달린 노를 쓴다. 카약은 북극해 연안의 알래스카와 그린란드 등에 살던 에스키모의 배가 원형이다. 에스키모들은 짐승가죽으로 배를 덮고 양날 노를 썼다. 요즘 카약은 덮개 일체형으로 제작된다. 인플래터블은 공기를 넣어 부풀리는 방식으로 래프팅에 쓰이는 배가 이것이다.

"패들을 물 속에 깊숙이 넣어요. 천천히. 급하게 저으면 안정적으로 패들을 넣을 수 없어요. 물살이 빨라도 패들만 안정되면 카약을 제어할 수 있어요. 추진력을 얻으려면 몸을 비틀어 주고요."

지난 주말 강원 홍천강에서 진행된 강남카누클럽의 카약 실습투어에 갔다. 국내 카누 인구는 2만명 정도. 이 가운데 개인 하드쉘(고형) 카약을 갖춘 수는 2,000~3,000명, 인플레터블을 소유한 사람은 훨씬 많다. 강남카누클럽 매니저 노현진씨는 "카약은 급류와 바다에서도 탈 수 있는 스포츠이지만 기초교육 6시간, 실습교육 6시간만 받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보니 말대로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역동성은 상당했다. 카약의 좁은 좌석은 유모차만했다. 하지만 앉아서 물에 뜨니 터보 엔진을 얹은 12기통 스포츠카의 운전석에 올라탄 듯했다.

"급류타기 모습 때문에 카약이 카누보다 배우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반대예요. 카누는 외날 노를 쓰는 데다 배의 움직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상당히 감각적인 조작이 필요해요. 거기 비해 카약은 기계적이죠. 양날 노로 물의 흐름에 대응하기 때문에 조작이 간단해요."

카약의 기초 기술은 스트로크와 스윕, 드로우 등이다. 스트로크는 패들을 이용해 앞(포워드)이나 뒤(리버스)로 움직이는 기술. 어깨 넓이로 패들을 잡고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인다. 양팔을 교차해 날을 수면에 넣을 때 직각이 되도록 주의한다. 리버스 스트로크를 짧게 여러 번 반복하면 카약을 세울 수 있다. 이 기술이 스토핑이다. 스윕은 스트로크를 크게 해서 카약의 방향을 전환하는 기술이다. 드로우는 상반신을 옆으로 돌려 옆의 물을 끌어당기는 기술로 횡으로 이동하거나 균형을 잡을 때 필요하다. 무척 직관적이다. 물 속에서 몇 시간 버둥대다 보면, 가르쳐 주는 사람 없어도 저절로 익히게 된다.

오전 내도록 계속된 비로 날씨는 꽤 쌀쌀했다. 개야리에서 출발한 실습투어는 모곡리까지 이어졌다. 초보자가 경치까지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물안개 너머, 걸어서는 다가갈 수 없는 풍경이 열려 있는 게 언뜻언뜻 눈에 들어왔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퇴적암 절벽을 뚫고 솟아 우윳빛과 분홍으로 꽃을 터뜨린 나무들이 천천히 옆으로 흘러갔다. 내연기관의 소음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열린 풍경이 또한 거기에 있었는데, 패들이 물에 들어갔다 나올 때의 소리가 마치 잿빛 물안개에 날숨이 닿아 내는 파열음인 듯 들렸다. 어쩌면 그 소리를 좇아 까마득한 과거의 인간들도 노를 저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춘천 의암호에 가면 또 다른 형태의 카누를 체험할 수 있다. 사단법인 춘천 물레길이 운영하는 카누 코스다. 이곳에선 캐나다에서 배워 온 정통 방식으로 만든 나무 카누를 탈 수 있다. 코스도 의암호와 중도를 도는, 비교적 자연적 환경에 가까운 코스다. 스포츠라기보다 수상 체험에 가깝기 때문에 교육이 간단하다. 15분 가량 안전교육을 받으면 2~3명씩 짝을 이뤄 카누를 즐길 수 있다. 배도 카약에 비?널찍하다 카약이 스포츠카, 아니 오프로드를 달리는 사륜구동 같았다면 잔잔한 호수에서 타는 카누는 고급 세단의 느낌이었다. 여기선 패들이 물과 닿는 소리도 부드러운 현악기 소리처럼 들렸다.

카약과 카누, 어느 쪽이 취향에 맞을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흙과 돌로 된 길 말고도, 한반도에는 무척 넓은 여행길이 펼쳐져 있다. 두 팔로 노를 저어서 나가야 만날 수 있는 자연 속의 길들이다.

여행수첩

●카약을 즐기기 위해선 물에 젖지 않는 복장(드라이수트)과 비상장비를 넣는 방수백, 허리에 연결돼 좌석 공간을 밀폐해주는 살포치마(스프레이스커트) 등이 필요하다. 수상레저안전법에 의해 급류 지역에 들어갈 땐 반드시 헬멧을 써야 한다. ●강원 인제군의 송강카누학교(www.paddler.co.kr)와 서울 뚝섬의 강남카누클럽(cafe.daum.net/gangnamcanoe)은 5단계(1~5스타)로 나뉜 정규 교육과정과 카누 투어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관련 용품 판매도 한다. ●춘천 물레길(www.mullegil.or.kr)은 의암호, 붕어섬, 중도 등을 우든 카누를 타고 1시간 가량 둘러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카누 한 대에 성인 2,3명이 탈 수 있으며 이용요금은 2인 3만원(3인 4만원). 주말엔 물안개 카누잉, 노을 카누잉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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