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학교에 가려는 초등학생의 성적을 고치기 위해 한 반 전체가 다시 평가를 하고, 학교생활기록부를 수정하는 등 초등학교 교육이 파행을 빚고 있다. 서울지역 2개를 포함, 전국에 단 4개뿐인 국제중이 초등 교육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23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A 교사에 따르면 2011년 이 학교 5학년이었던 B양의 국제중 진학을 돕기 위해 B양의 반 전체가 평가를 다시 받고 성적표를 수정했다. B양의 학부모는 딸이 1학기에 미술 등 3개 영역에서 '매우 잘함'이 아닌 '잘함'을 받자, 국제중 1단계 서류전형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전 영역에서 '매우 잘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학교에 성적표 수정을 요구했다. 이 학부모는 "교사가 평가를 엉망으로 했다"며 유명 법무법인과 대통령까지 들먹이며 학교측을 압박했고, 서울시교육청에 민원도 냈다. 이 일을 덮고 싶었던 학교 측은 2학기 시작 후 B양의 반 전체에 실기평가 과제를 새로 내도록 했고, 학년부장과 교감, 교장의 결재를 다시 받아 1학기 통지표를 새로 썼다. B양은 결국 10개 과목의 모든 영역에서 '모두 잘함' 성적을 받았고, 국제중에 진학했다.
A 교사는 "재평가를 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재평가에서 한 가지 과제로만 점수를 낸 것도 문제"라며 "담임이 평가를 잘못해서 생긴 문제인 것처럼 처리됐지만 사실상 국제중에 가려는 B양의 성적을 고쳐주기 위해 한 학급이 동원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A 교사는 "당시 이 일이 알려져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불만이 많았지만 나서는 사람이 없어 유야무야됐다"며 "담임 교사는 마음 고생을 한 끝에 결국 휴직했다"고 말했다.
국제중 진학에 눈이 먼 학부모들은 학교생활기록부를 고쳐달라거나 수상 실적을 적어내기 위해 정규 수업과 동떨어진 교내 대회 개최를 요구하기도 했다. A 교사에 따르면 이 학교는 2010년에도 국제중 입학을 준비 중이던 6학년 C양의 무단결석을 없던 일로 처리했다. 한 쪽 부모를 따라 미국에 한 달 간 머물렀던 C양은 결석 처리해야 맞지만, 역시 '국제중을 보내야 한다'는 학부모의 요구에 출석으로 생활기록부를 조작했다. 서울의 다른 초등학교 D 교사는 "'보통'을 받은 학생의 부모가 '우리 아이가 방학 동안 공부를 많이 했는데 시험을 다시 볼 수 없겠느냐'고 물어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부모들이 과도한 요구를 일삼는 것은 국제중학교가 특목고, 국제고 등 입시 명문고와 명문대로 진학하는 통로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아이 앞길 막는 교사'로 몰릴까 봐 국제중 준비 학생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강남구의 초등학교 E 교사는 "한 학생이 국제중 입시를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는데, 미리 알았다면 '보통'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관리자의 지시로 성적 조작을 했다면 관리자는 중징계 대상이 될 수 있고, 이를 요구한 학부모 역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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