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자 긴축정책을 고수해 온 유럽연합(EU)이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긴축을 주도해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정책완화 가능성을 밝힌 데 이어 호세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이 “긴축정책이 정치적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바호주는 22일 벨기에 브뤼셀의 컨퍼런스에서 “광범위한 경제개혁과 과감한 재정감축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정책이 성공하려면 최소한의 사회·정치적 지지를 얻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집행위는 재정위기국이 긴축 속도를 줄일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포괄적 권한을 가졌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발언”이라고 논평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EU 집행위가 독일 주도로 진행된 긴축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이례적으로 인정했다”고 해석했다.
앞서 메르켈은 프랑스의 초과적자를 용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해 체결된 신재정협약에 따라 모든 EU 회원국에 적용되는 재정적자 목표치(국내총생산의 3% 이하)를 올해는 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메르켈은 지난주 언론 인터뷰에서 “프랑스 재정적자 문제는 올리 렌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에게 일임하겠다”며 “대신 프랑스는 내년 적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렌은 EU 내 대표적 긴축완화론자다.
EU 핵심인사들이 잇따라 입장을 바꾼 것은 역내 성장률이 악화하면서 긴축 논리가 힘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발표된 EU 통계청 보고서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2011년 4.2%에서 지난해 3.7%로 감소했지만 구제금융을 받은 재정위기국의 상황은 오히려 악화했다. 스페인의 적자 비율은 같은 기간 9.4%에서 10.6%, 그리스는 9.5%에서 10%, 포르투갈은 4.4%에서 6.4%로 증가했다. 흑자국은 독일이 유일하다. 유로존 성장률 또한 올해 1분기 -0.1%를 기록, 6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할 전망이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 운용자인 빌 그로스 핌코 매니저는 “영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이 재정긴축을 성장의 방도로 여겼지만 그렇지 않다”며 “이제는 돈을 써야 할 때”라고 FT에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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