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지사가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밝힌 후 공공의료에 관한 논란이 뜨겁다. 폐업을 주장하는 측은 만성적자와 강성노조 때문에 경영정상화가 어렵다는 것이고, 반대하는 측은 돈보다 생명이 소중하고 가난한 환자를 돌보기 위해서는 손해 보는 경영도 무릅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얼핏 보면 전자는 국민건강과 의료의 공공성을 무시한다는 비난을 받기 쉽고, 후자는 이를 지켜내는 수호천사처럼 정의롭게 느껴진다.
필자는 32년 전 군의관으로 국무총리실에 파견되어 공공의료체계 개선방안의 초안을 만들었다. 당시 내무부 산하 행정조직으로 있던 시·도립병원을 법인화해서 운영의 유연성을 주고 우수 의료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대학병원과의 연계방안도 마련되었다. 결핵병원 같은 특수 병원은 국립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핵심적인 문제는 변함이 없다. 당시 도립병원에 근무했던 한 의사가 "환자가 없어 우리는 월급 받는 일만 하고 있다" 고 자조적으로 말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진주의료원의 인건비 비율이 89%라고 하면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만일 환자는 넘쳐나는데 저소득층이 많고 과잉 진료를 하지 않아 건당 진료비가 낮은 것이 적자의 원인이라면 이는 그야말로 '착한 적자'다. 적자가 난다고 해서 누구도 폐업을 주장할 수 없다. 오히려 세금 좀 더 내서라도 공공의료 기관을 늘리자는 주장이 탄력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병원이 잘 돌아가고 직원들이 바쁘게 일한다면 적자가 나도 해고 될 염려도 없다. 그러나 일 없이 월급을 받는다면 불안이 커지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조는 강성이 될 수밖에 없다.
진주의료원은 설립된 지 100년이 넘었다. 자혜의원이라고 불렸던 일본 식민정책에 의해 설립된 병원 중 하나다. 정치적, 역사적 해석을 유보하고 의료적으로만 보면 도립병원은 전국에 고루 설치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해방 후 수십 년 동안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시장(市場)의 힘으로 자체 성장한 민간의료에 비해 경쟁력을 잃어버렸다. 시설은 노후화되고 대우도 좋지 않은데다 진로까지 불투명한 의료진은 자주 이직했으며, 의사가 없으면 환자는 더 줄게 된다. 정말 오갈 데 없는 환자를 제외하고 일반 국민들은 도립병원을 외면한 것이다. 쉽게 일자리를 옮길 수 없는 일반 직원들만 빈 병상을 지키며 애가 탄다. 이것이 해방 후 시·도립 병원이 반복한 악순환이다. 또 어렵게 예산이 확보되어 신축한 병원들은 규모를 크게 늘려 시 외곽으로 옮기는 바람에 접근성을 더 어렵게 했다.
일각에서는 공공병상 비율이 10% 수준밖에 되지 않아 공공의료가 축소되는 것을 크게 우려한다. 공공의료 강화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은 전국민 보험이 정착되어 모든 의료기관이 보험환자를 보도록 강제화 되어 있고 아주 빈곤한 국민들에게는 의료급여제도로 비용을 지원한다.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서는 민간병원에도 공공의료 기능을 위임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중고등학교도 공립이냐 사립이냐에 관계없이 모두 공교육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설립구분에 따른 병상 비율은 크게 의미가 없다. 어떤 담론으로도 도민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진주의료원은 존재할 정당성을 잃게 된다.
5년 전 광우병 쇠고기 파동 때 확인되지 않은 소문, 인터넷 전파, 정치권의 비난전, 단식, 농성, 촛불 집회가 이어지면서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파편적 모습만 보고 도덕적 기준으로 몰아가는 극단적 행동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여지껏 방치해 두다가 느닷없이 문을 닫겠다는 것도 무책임하다. 홍 지사도 만성적자와 강성노조 탓만 할 게 아니라 운영 주체로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와 서민의료는 어떻게 구체화 할 것인지를 진솔하게 밝혀야 한다. 보건복지부 장관도 눈치 보기보다는 공공의료의 비전에 대해 소신을 피력해야 한다. 한국일보는 얼마 전 '위기의 일반고'란 기획 취재를 통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정확한 심층 취재로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정보제공은 언론의 몫이다.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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