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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 존 데이빗 스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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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 존 데이빗 스티어

입력
2013.04.2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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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에서 간호사였던 존 데이빗 스티어는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수학자 존 내쉬의 아들이다. 아버지와 이름이 같고 성은 다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성 대신 이름 '존'을 물려주었고, 아들은 어머니의 성 '스티어'를 따랐다. 아버지는 출신이 그저 그런 어머니와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들을 귀여워했지만 호적에 올리려 하지 않았고, 양육비를 보태려 하지도 않았다.

몇 년 후 아버지는 아름답고 지적인 다른 여인과 웨딩마치를 올린다. 그리고 곧 이복동생이 태어난다. 하필 이 아이도 '존'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형의 이름도 존. 아우의 이름도 존. 물론 혼인서약을 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이번 아이는,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아 '존 내쉬'라 불리게 된다. 원래는 이복형이 가졌어야 할 이름. 아우가 형의 이름을 앗아간 셈이다. 요컨대 존 데이빗 스티어는 이름의 형식으로 두 번 존재를 부정당한다. 첫번째는 아버지의 가문에 자손으로 등록되는 것을 거절당함으로써. 두번째는 그의 이름 위에 동생의 이름이 덧씌워짐으로써.

아버지 존 내쉬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수학적 천재성, 오랜 정신병 경력과 기행(奇行), 그리고 노년에 얻은 노벨상의 영예로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삶은 평전으로도 쓰여졌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내 마음에 오래 담아두고 싶은 것은 천재수학자 존 내쉬보다는 간호사 존 데이빗 스티어, 삭제의 흔적을 간직한 아들의 이름이다.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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