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의사부인 사망 사건 피의자인 남편 A(34)씨가 2011년 겨울 서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거짓말탐지기 의자에 앉았다. '아내가 욕실에서 사고사로 죽은 것 같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는 A씨에게 검사관이 질문을 던졌다.
"아내가 살해된 장소를 알고 있습니까?" A씨의 답은 예상대로'모른다'였다. 검사관의 질문은 이어졌다. "거실입니까?" "욕실입니까?" "주방입니까?" 시종일관 '모른다'고 대답하던 A씨가 반응을 보인 건 검사관이 "안방입니까?"라고 물을 때였다.
다른 장소에선 반응이 없던 A씨는 '안방'이라는 단어에 얼굴 온도와 혈압이 올라가고 땀이 났다. 호흡도 순간 멈췄다. 검사관들은 A씨가 아내를 안방에서 살해한 것 같다는 감정 결과를 경찰에 통보했다. 경찰은 이후 A씨의 안방에서 루미놀 검사를 실시했고 침대와 이불에선 혈흔이 추가로 발견됐다.
국과수 거짓말탐지기 담당자인 김희송(42), 지형기(42), 홍현기(32) 검사관은 만삭의 의사부인 사망 사건 피의자 검사에 사용한 이 질문법을 '숨김정보검사'라고 소개했다. '당신이 살해했습니까?'라고 직접적으로 묻는 '일반정보검사'와 달리 범인만이 알 수 있는 각종 범행 정보를 물어봐서 피검사자의 거짓말 여부를 알아내는 기법이다.
22일 만난 이들은 이날도 유력한 휴대폰 절도 용의자에게 휴대폰 기종과 색상 등을 묻는 숨김정보검사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마친 참이었다.
김희송 검사관은 "범인일 경우에는 범행 도구를 보여주면 동공 크기가 커지는 등 일정한 생체 반응이 나온다"며 "숨김정보검사는 오류 가능성이 거의 없고 싸이코패스처럼 정서적으로 둔감한 사람들에게도 효과적이라 많이 쓴다"고 말했다.
국과수 거짓말탐지기 검사관 3명은 모두 심리학 박사급으로 거짓말탐지기를 다루는 군, 검찰, 경찰 등 수사당국과는 달리 유일하게 관련 논문을 꾸준히 발표하고 검사법을 개발하는 이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다. 특히 이들 국과수 검사관들은 동공 거짓말탐지기를 2009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들이 한 해 동안 하는 거짓말 탐지기 검사는 사소한 교통사고부터 박시후 사건처럼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까지 약 500건 정도.
이들은 거짓말탐지기가 피검사자의 결백을 밝혀줄 때도 많다고 했다. 대표적인 게 2005년 수도권 일대 술집을 돌며 여성 종업원 140여명을 연쇄 성폭행한 '빨간모자 사건'. 당시 경찰이 수사 초기에 지목한 유력한 용의자 B씨는 경찰에서 '사건 발생 장소에 간 것은 맞지만 범인은 아니다'라고 억울함을 호소했고 거짓말탐지기도 B씨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판정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경찰은 B씨가 아닌 진짜 '빨간모자'를 잡았다.
지형기 검사관은 "단순 교통사고는 40% 정도의 피검사자가 거짓말탐지기 검사 도중에 사실을 실토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며 "그래서 우리끼리는 '거짓말탐지기'가 아니라 '진실탐지기'로 부른다"고 말했다.
거짓말탐지기는 정확도가 높게는 97%까지 나오지만 아직까지 법정에서 '단독증거'로는 채택하지 않는다. 이들은 "진술의 진위가 바로 판독되는 최첨단 거짓말탐지기를 개발, 2~3년 내에 보급할 계획"이라며 "거짓말탐지기를 단순히 정황증거로 쓰거나 초동수사 방향을 잡는 데서 나아가 미국처럼 범죄예방 등 다양한 용도로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할 방법을 모색할 때"라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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