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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독촉에서 해방되어 고맙고…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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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독촉에서 해방되어 고맙고… 미안합니다"

입력
2013.04.2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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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빚을 줄여준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기대감, 빚을 내고도 갚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뒤섞였다. 빚을 얼마나 감면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초조함과 지긋지긋한 채권 추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감도 묻어났다.

빚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서민의 자활을 돕는 국민행복기금 채무조정신청 가접수가 시작된 2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접수창구를 찾은 A(34)씨는 "빚을 줄여준다니 고맙기도 하고 지금까지 잘 갚아온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학자금 대출로 2,500만원을 대출받은 그는 "연체가 이어지다 보니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빚이 늘었다"며 "최근 어렵게 직장을 구한 만큼, 빚을 줄여 준다면 반드시 갚아나가겠다"고 밝혔다.

캠코 본사와 전국 도청ㆍ광역시의 서민금융종합지원센터, 국민은행과 농협은행, 신용회복위원회 지점에서 이날 일제히 시작된 채무조정신청 가접수에는 1만명이 넘는 채무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오후 6시 현재 채무조정 신청자가 모두 1만2,367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현장을 찾은 장영철 캠코 사장은 "가계 부채의 함정에 빠져 재기의 노력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국민행복기금은 그런 분들 중 자활의지를 보이는 분들을 돕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날 캠코 본사 3층에 마련된 40개 접수창구에는 채무 감면을 기대하며 찾은 신청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신청 시작 시각인 오전 9시가 되기도 전 수십명의 신청자가 미리 도착해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고 있었다.

식당보조로 일하고 있다는 B(44)씨는 무엇보다 빚독촉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점에 고무돼 있었다. 그는 간판사업을 하다 납품업체가 부도나면서 대금 결제가 막히자 대부업체에서 1,000만원 가량을 빌렸다. 그는 "그간 10분을 멀다 하고 걸려오는 전화와 돈을 갚으라는 문자에 고통스러웠다"며 "추심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말에 가접수 첫날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돌려막기로 생활비를 충당하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50대 C씨는 "직장도 잃고 빚 독촉도 만성이 돼, 상환을 포기하고 살다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찾아왔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이날 오후 3시까지 이곳을 방문한 채무자들은 438명. 하지만 기자들의 취재에 선뜻 응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연체한 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할 말이 있겠느냐"며 말을 아꼈다. 창구에서는 "내 빚이 얼만지 모르는데 여기서 확인이 가능하느냐" "최대한 감면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간혹 "빚을 절반 줄여줘도 힘든데 더 줄여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국민행복기금 채무조정신청 가접수는 이달 30일 마감되며, 본접수는 5월1일부터 오는 10월31일까지 진행된다. 본접수 기간에는 인터넷 신청도 가능하다.

한편,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오전 캠코 앞에서 '국민행복기금 국민감시단' 출범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행복기금이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공약보다 축소됐다며 공약 이행을 촉구했다. 감시단 측은 "근거 없는 '채무자 도덕적 해이론'으로 행복기금이 서민이 아닌 금융권을 위한 제도로 전락했다"며 "기금 규모와 대상을 축소하고 대상 선별 기준을 만드는 등 채무자 구제와 자활·지원의 사회안전망이 정착되기 힘든 일회성 이벤트가 됐다"고 주장했다. 또 "당장의 채무만 조정된다고 해서 저소득 계층의 자립이 성공하지는 않는다"며 "효과적인 자립 자활 프로그램의 연계를 통해 채무조정과 새출발이 가능하도록 지원해야 하는데 정부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힌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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