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신곡 '젠틀맨'이 공개되었다. 그는 '강남스타일'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엉뚱하고 이기적인 마초 남성을 희화화해서 표현했고, 상당한 성인 취향의 정서를 담았다. 일부 아이들이 보기에 민망할 만한 장면도 곳곳에 있었다. 유튜브에서 최단시간 2억뷰를 넘어서는 등 일단은 성공적인 것 같다.
헌데 그가 국가대표 수준의 음악인이 된 덕분에, 신곡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볼 수 있었다. 대통령은 춤의 저작권을 구매한 것을 칭찬했고, 한 관료는 창조경제의 사례로 언급했다. 한 방송국은 공공시설을 발로 차는 장면이 있다면서 뮤직비디오의 방송불가 판정을 했다. 어떤 교수는 기명칼럼으로 그의 음악이 '포르노 한류, 미국저급문화의 첨병'이라고 통렬히 비판했다. 그런데 그는 스포츠 평론가였다. 한 시의원은 비디오에 등장한 서울시청의 도서관에서 외국인들이 춤을 추면 큰일이라는 발언도 했다. 이토록 사회저명인사들이 일제히 한 곡의 노래에 의견을 낸 적이 있나 싶다. 그런데 대부분 젠틀맨이 우리나라 이미지를 망칠까 걱정이라는 우려 섞인 걱정이다.
그런 분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에게 언제부터 싸이가 그토록 중요한 관심대상이었나? 2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두 번의 병역, 마약 전과 등 좋지 않은 일들이 점철된 30대의 앞날이 불투명한 가수였다. 싸이 본인은 '딴따라', '삼류'라 자처하고, 대학 축제에서는 소주 병나발을 부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싸이에게 요새 걱정의 의견을 내는 사람들은 그가 세계적 스타가 되었으니 몸가짐도 조신해야 하고, 성실하고, 윤리적 선을 지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놀러 나가는 아이에게 놀 때는 놀되 학생의 본분, 자식으로서 본분을 잊지 말라고 훈계를 하시는 교사나 부모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싸이는 원래 그가 생긴대로 살고 있는 싸이일 뿐이고, 젠틀맨은 그의 삶의 연장선에서 나올 수 있는 수많은 그의 곡들 중 하나다. 만일 싸이가 선을 지키는 성실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특이한 스타일의 노래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또 그는 그렇게 살 사람도 아니다. 그는 미국의 스타들이 그러듯 즐거운 파티를 하고, 화려한 셀러브리티의 삶을 즐길 것이고, 파파라치의 표적이 될 것이다. 엉뚱한 추문의 표적이 될 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건 그의 인생이고 그가 책임지면 될 일이다.
우리는 한국인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 그때부터 그에게 지나친 동일시를 하고 싶은 경향이 있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같이 고민해주고, 걱정해주고, 의견을 주기를 즐긴다. 동일시를 하고 관심을 갖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한국인이 성공을 하고, 한국문화의 일부가 세계에 알려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또 자기가 염원한 방식대로 잘 되면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싸이에게 강남스타일을 만들라고 주문한 적이 없다. 그도 이럴 줄 알고 작정하고 만든 것도 아니었다. 그냥 원래 하던 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자기 스타일대로 하다 보니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싸이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 자리에 서서 자기 식대로 하고 있다.
지나친 동일시와 염려의 에너지를 거두자. 그냥 즐기자. '아… 저런 것도 있구나'라고 가벼운 마음으로 보면 된다. '저런 걸 외국인들이 보면 한국을 어떻게 볼까'라는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둔 그때의 사고관을 이제는 버리자. 싸이에게 우리가 배울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다 보면 스타일이라는 게 만들어지고 나름의 독창성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그것이 삼류를 지향한다고 해도 그만의 스타일이기에 세계는 열광했다. 젠틀맨의 품격은 남의 일에 훈수 두고 싶은 욕망을 꾹 참고 자기 할 일에 열중하는 것에서 만들어 진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깊이 빠져 있다 보면 남에게 신경 쓸 겨를도 없다.
'알랑가 몰라 왜 화끈해야 하는지'라고 젠틀맨은 시작한다. 알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화끈한 걸 즐기라는 얘기다. 우려의 훈수를 두고 싶은 분들에게 영어로 좋은 표현이 있다. 'Mind your own business'.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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