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막으면 그만, 한 번이라도 승리를 지켜내지 못하면 모든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마무리 투수의 자리는 언제나 고독하고 쓸쓸하다. 언제 어떻게 뒤집힐 지 모르는 긴박한 경기 속에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불펜에서 몸을 풀어야 한다. 그만큼 리그를 대표하는 마무리가 되기까지는 수 많은 땀과 노력이 수반 되어야 한다.
이렇게 힘든 마무리 역할을 누구보다 성실함을 바탕으로 이겨내는 선수가 있다. 2년 째 '오승환 천하'였던 구원왕 경쟁에서 손승락(31ㆍ넥센)이 당당히 맨 위에 이름을 올리며 맹활약하고 있다. 손승락은 "올 시즌 개인적인 목표는 없다. 출전하는 경기에서 모두 세이브를 따내 팀이 가을 야구를 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손승락은 손승락이다
2005년 현대 유니폼을 입고 선발 투수로 활약했던 손승락은 2010시즌부터 마무리로 전업한 이후 지난해까지 76세이브를 올렸다. 2010년에는 26세이브로 구원왕에 올랐고 매년 평균 25세이브 이상의 성적을 올리면서 꾸준한 모습을 보였다. 올해도 9경기에 나가 9세이브와 평균자책점 0.96을 기록하고 있다.
"마무리를 시작한 뒤 스스로 생각했을 때 항상 꾸준한 모습을 보였다고 자부한다. 그만큼 마지막에 마운드에 선다는 것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손승락과 자주 비교되는 것은 동갑내기 '끝판왕' 오승환이다. 그렇지만 손승락은 오승환과의 비교를 원치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오승환 같은 마무리가 아닌 손승락만의 스타일로 불리길 원한다. 손승락은 "승환이는 잘 던지는 투수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난 나일 뿐이다. 계속 꾸준한 모습으로 '오승환 같은'이 아닌 '손승락 같은'스타일을 만들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손승락을 바꾼 염경엽 감독의 한 마디
"승락아, 투수 파트 말고 수비나 주루 파트도 한번 공부해봐라." 지난 시즌 초반 염경엽 당시 넥센 주루코치는 손승락에게 한 가지 조언을 했다. 타자와의 싸움에 집중하고 있던 손승락에게 위기의 순간 주자의 움직임이나 수비 위치 등 시야를 넓히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한마디였다.
손승락은 이후 주루, 수비 등 이른바 '토털 베이스볼'에 대한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사실 손승락은 올 시즌 마무리 투수 치고는 다소 피안타율(0.270)이 높다. 그렇지만 확실히 올해는 달라졌다. 꾸준히 공부를 하면서 경기를 보는 시야가 넓어졌고 위기의 순간에도 여유가 생겼다.
"감독님 덕분에 다시 야구를 하는 기분이다.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면서 스스로가 커가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자신과의 타협을 가장 경계
마무리 투수는 언제 어떻게 경기 상황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상대적으로 등판 날짜가 정해진 선발 투수에 비해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손승락은 "항상 경기 중반 이후에 '내가 나갈 수 있겠다'는 긴장감을 놓지 않아야 한다"면서 "마무리로 전업한 지 4년 차가 됐지만 매 경기 방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비결이다"고 설명했다.
손승락은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 묻자 의외로 "내 공이 좋지 않은데 스스로 타협하려고 들 때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힘든 시절을 잠시 떠올린 그는 "야구를 하면서 '괜찮아. 괜찮을 거야'라며 타협한 적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거짓말로 위로를 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 것들을 가장 경계한다"고 말했다.
경기가 끝난 뒤 손승락은 항상 자신의 피칭에 대해 복기를 한다. "잘 될 때든지 안 될 때든지 항상 다시 복기를 하다 보면 반성할 부분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2013년의 넥센 무조건 가을야구다
손승락은 가을 야구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강하다. 올 초 "언젠가 넥센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날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에 서는 것이 소원이다"고 밝히기도 했다.
올 시즌 염경엽 신임 감독체제 아래 넥센은 정말 달라졌다. 22일 현재 12승6패로 단독 2위에 올라있다. 선수들 눈빛에서 '우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손승락은 "염 감독님만 믿고 따라간다면 분명 우리는 4강에 올라 갈 수 있을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감독님께선 어떤 순간이든지 플랜 A, B 등 모든 것이 준비돼 있다"면서 "선수들이 절대적으로 믿고 따라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손승락은 "선수들이 말은 안 해도 모두 느끼고 있을 것이다"라며 "올해야 말로 분명 가을 야구를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나중에 은퇴했을 때도 팬들로부터 '정말 꾸준했던 선수였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이 남은 것 같다."
이재상기자 alexe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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