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관절이 찌릿찌릿 아파도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는 분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려고 참고 걸었습니다."
혈우병 환우들이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을 돕기 위한 기금 마련에 나섰다.
돌도 지나기 전 양 무릎에 시퍼런 멍이 잡힌 뒤로 반세기 가까이 혈우병을 앓고 있는 심은기(52ㆍ중증 A형)씨. 그는 21일 오후 1시 서울 한강시민공원 반포지구 달빛광장에서부터 잠원지구 인근 축구장까지 목발을 짚으며 2㎞를 걸었다. 일반인이면 15분 걸리는 거리지만 심씨는 40분간 땀을 흘려야 했다. 오른쪽 무릎을 제대로 굽힐 수도 없는 그는 지난 1월 중순 인공관절 수술까지 받은 터였다. 그가 바짓단을 끌어올리자 세로로 15㎝정도 되는 수술 흉터가 그의 통증을 대신 전했다.
평소 서 있기도 버거운 심씨가 '2013 세계 혈우인의 날(매년 4월17일)'기념 '두 발로 잇는 세상'걷기 대회에 참가한 이유는 자신보다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희귀난치병 환자를 돕기 위해서다. 녹십자 등 후원단체들은 혈우인들이 1㎞를 걸을 때마다 2만원의 기부금을 혈우인의 이름으로 내기로 약속했다. 심씨는 자신의 힘으로 치료기금 4만원을 낸 것이다.
이날 혈우병 환자 150여명은 심씨처럼 기부금 마련을 위해 각자 몸 상태에 따라 1~2㎞를 걸었다. 따스한 봄 날씨였지만 이들은 두 발로 걸으며, 목발을 짚으며 혹은 휠체어를 굴리며 구슬땀을 쏟았다.
생후 22개월 만에 혈우병 판정을 받은 배수한(7ㆍ중증 A형)군도 씩씩하게 발걸음을 뗐다. 삼형제 중 차남인 배군만 유일하게 혈우병을 앓고 있지만 형, 동생과 똑같이 2㎞코스를 완주해 기부금 4만원을 보탰다. 배군의 어머니 이미자(39)씨는 "아들은 왼쪽 무릎 관절에 피가 계속 고여 굽혔다 폈다도 제대로 하기 힘든 상황"이라면서 "그런데도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는 또래 친구를 돕겠다고 완주해 대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혈우병 환자들의 걷기로 모인 기부금은 애초 목표액인 500만원을 훌쩍 넘겼다. 이 돈은 조만간 한국희귀질환재단에 전달된다.
행사를 주관한 한국코헴회(Korea Hemophilia AssociationㆍKOHEM)의 김태일 사무국장은 "혈우인들은 대부분 혈우병성 관절증을 앓아 걷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혈우인들과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이 함께 극복 의지를 키우도록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혈우병은 결핍 혈액인자에 따라 AㆍB형으로 나뉘며 2011년 기준 국내에는 2,100여명의 환우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글ㆍ사진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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