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가속화 전망 대세… “주중 100엔 돌파” 관측도
우리 경제ㆍ수출엔 악영향 우려 높아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계기로 한동안 잠잠했던 엔ㆍ달러 환율이 다시 치솟을(엔화가치 하락)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서방 선진국들이 최근 엔화가치 급락의 원인인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을 사실상 용인하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엔ㆍ달러 환율 100엔 돌파를 시간 문제로 보는 분위기다. 우리 수출과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19일 G20 회의 결과가 알려진 직후,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ㆍ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99.69엔까지 치솟았다 전날(98.17엔)보다 1.35엔 급등한 99.52엔으로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론 지난 10일(99.78엔)과 11일(99.68엔) 이후 일주일 여 만에 다시 최고치다.
작년 말부터 초고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엔ㆍ달러 환율은 이달 초(4일) 일본은행의 “향후 2년 안에 시중 자금공급 총량을 2배로 늘리겠다”는 선언으로 지난 11일 장중 100엔 직전까지 치솟았으나 보스턴마라톤 테러 등으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퍼지면서 15일에는 96.77엔까지 하락했다.
잦아들던 엔저 기세에 다시 기름을 부은 건 G20의 공동선언문이었다. ‘G20이 일본의 양적완화에 제동을 걸 것’이라는 시장 일각의 기대와 달리, 이날 공동선언문은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다. 다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 그룹의 반발을 고려해 “장기간 양적완화에 따른 부작용은 주의해야 한다”는 문구로 구색만 맞췄다.
시장 전망은 대체로 ‘추가 엔저 가속화’에 쏠리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당장 이번 주 중 엔ㆍ달러 환율이 4년 만에 100엔을 돌파할 것이란 전문가 예상을 소개했고 향후 돌발 상황이 없는 한, 엔화 환율이 연내에 105엔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내 분위기도 비슷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G20이 일본의 정책을 공인한 만큼 조만간 100엔 돌파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아베노믹스가 상당부분 정치적 동기에서 출발한 점으로 볼 때, 일본 정부의 양적완화 기세도 최소한 7월말 참의원 선거 때까지는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증권 이상재 연구원도 “G20 결과가 새로운 악재라 하긴 어렵지만 일본 정부의 기세로 볼 때 2분기 중 100엔 돌파는 가능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다만 최근 미국 재무부의 ‘엔저 경고’ 보고서에서 보듯, 자동차업계 같은 미국 내 대일 경쟁업종의 압력 등을 감안하면 달러당 110엔대 수준의 극단적 엔저는 미국이 용인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일본의 양적완화가 강도를 높이면 장기적으로 원화 환율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최근에는 북한 리스크와 외국인들의 투자 포트폴리오 조정에 따른 주식 매도 등으로 원화가치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조만간 엔화 약세를 피하려는 ‘엔 캐리 트레이드’(엔화를 빌려 제3국에 투자하는 금융거래) 등이 늘어나면서, 엔화가 국내에 유입되면 원화도 절상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악영향의 정도를 놓고는 논란이 있지만 엔저가 우리 수출과 경제에 부정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상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엔화가치가 지금보다 낮았음에도 우리 수출이 견딜 수 있었던 데는 세계경기 호황이 작용했지만 지금은 글로벌 경제상황이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금융연구원 박해식 선임연구위원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로서는 엔저가 상당한 부담”이라며 “장기적으로 대외신인도나 외채상환능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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