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에 접속한다는 것은 해킹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우리가 만난 한 취재원은 사이버 보안의 취약성을 숙명인 양 말했다. 또 다른 한 민간 보안 전문가는 "해킹을 당한 곳과 안 당한 곳을 구분하기보다 당한 사실을 아는 곳과 알지도 못하는 곳을 구분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도 했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모든 소유의 역사는 약탈의 역사였고, 배타의 공간은 침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난공(難攻)의 요새는 있었어도 불락(不落)의 성채는 없었다.
물론 과장도 있을 것이다. '숨 쉬는 모든 존재는 바로 내일 숨이 멎을 수 있다'는 말처럼, 확률이나 가정에 기반한 어떤 진실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실체적 진실을 감각적으로 불리거나 졸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저 과장된 진술들은 감수성의 차이, 문제의식의 차이에 기인하는 걸지 모른다. 범죄와 일상으로 싸워야 하는 이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일반인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경험해 온 정보화의 현란한 속도와 편의에 비해 우리가 갖춰온 유사시의 방비ㆍ수습 능력이 취약한 것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정보화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도 문제다. "3.20 사태와 같은 대규모 사이버 테러가 일어나도, 내 PC가 좀비로 가담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대개는 어깨 너머로 게임 구경하듯 지내죠."한 사이버 보안전문가는 '해커=악당'이라는 그릇된 인식과 '해커=영웅'이라는 왜곡된 감성도 우리 사회의 사이버윤리 불감증과 허술한 보안의식을 방증한다고도 했다.
우리가 만난 사이버 보안관들은 구동 속도에는 열광하면서 보안패치 업데이트 지시는 묵살하기 일쑤인 우리의 게으름과, 블랙해커들이 내세우는 어떤 '대의(大義)'에 생각 없이 동조하는 우리의 인식과도 싸우고 있었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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