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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헷갈리는 새 정부의 경제철학

입력
2013.04.19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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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떠도는 우스갯소리 하나.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김정은의 '마음', 안철수의 '새 정치'.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뭘까. 정답은 '너무 애매모호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창조경제의 열병에 휩싸였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경제부흥을 위한 첫 번째 과제로 창조경제를 내세웠으니, 정부와 공공기관 종사자는 물론, 정책의 향방에 민감한 민간기업들도 관심을 갖는 건 당연지사. 그런데 '창조'라는 개념 자체가 추상적이다 보니 창조경제의 주무부처라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청와대 미래전략수석도, 심지어 경제공약을 입안했다는 전문가조차도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 국민들이 개념정리를 포기할 수는 없는 법. 각종 포럼과 행사마다 창조경제 배우기가 유행이고, 창조경제라는 용어를 처음 썼다는 영국의 경영전략가 존 호킨스는 정부, 공공기관,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초청해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는 소식이다. 그런데도 아직 공부가 부족한 탓인지 정부 내에선 창조경제를 놓고 아전인수식 해석이 난무한다. 참여정부와 MB정부에서도 추진됐던 기존 정책에 '창조'자만 갖다 붙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상청은 "기상기후산업이 창조경제의 원동력"이라 강조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료기기가 미래 창조산업"이라고 정의하는 식이다.

여당의 고위 당직자들이 "창조경제가 도대체 뭐냐"는 짜증 섞인 불만을 쏟아낼 정도니, 영혼이 없는 관료들과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민간기업의 당혹스러움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처럼 새 정부의 핵심 국정 어젠다가 혼선을 빚고 있으니 구체적인 정책의 밑그림이 제대로 그려질 리 없다. 왜 첫 걸음부터 이리 헤매게 된 걸까.

국정목표가 일관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만 해도 국민들은 '경제민주화'를 박 대통령의 확고한 경제철학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 3분의 2 이상이 지지하는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을 선점했고, 그 결과 대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의 1등 공신인 경제민주화가 '5대 국정목표'에서 슬며시 사라졌고, 그 첫 번째 자리를 창조경제가 이어받았다.

박 대통령의 설명을 빌리자면 창조경제는 "창의성을 핵심가치로 두고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그래서 새로운 일거리,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역시 어렵고 난해하지만, 어쨌든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경제민주화는 공정경쟁과 기회균등, 빈부격차 해소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박 대통령은 상이한 이 두 개념을 병렬적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창조경제도 경제민주화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국민들을 헷갈리게 하는 요인이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기조가 무엇인지 모호하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재벌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둘러싼 최근 논란에 대해 "경제민주화는 대선공약이기도 하니 반드시 지켜나가도록 하겠다"면서도 "도가 넘으면 역작용도 우려해야 한다"고 했다. 재벌의 기존 관행과 기득권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인지, 경제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횡포를 확실히 제어하겠다는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창조, 창의성, 융합 등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훌륭한 가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5년 단임정권이 국정목표로 삼기엔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창조, 창의성, 융합 등을 통해 새로운 결과물을 얻으려면 20~30년 이상 교육과 문화를 혁신하려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굳이 '창조'라는 슬로건을 고집하지 말고, '중산층 70% 복원' '중견기업 10% 달성' 등 좀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 국정목표를 설정하는 건 어떨까 싶다. 그러면 지금처럼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 사이에서 줄타기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고재학 경제부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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