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상대로 한 검찰의 수사 범위는 개략적으로 드러나 있지만, 의외의 방향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검찰은 일단 경찰이 18일 송치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을 마무리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경찰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사이트에 정부 여당에 유리한 댓글을 달았다는 점을 문제 삼아 국정원 직원 2명 등 3명을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송치했지만, 국정원 차원의 조직적인 선거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했다. 경찰 수사 결과만 보면 이번 사건은 단순 개인비리에 불과한데, 일사불란한 국정원 조직의 특성을 감안하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윗선이 개입된 조직적인 범행인지 여부를 밝혀내는 것이 검찰수사의 초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윗선 개입 의혹은 원 전 원장의 국내정치 개입 의혹 수사와도 합치될 수 있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 내부게시판에 '원장님 지시ㆍ강조 말씀'이란 글을 통해 종북좌파의 사이버 선전ㆍ선동에 적극 대처하고 4대강 사업과 세종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등 이명박 정부의 주력사업을 홍보할 것을 주문했다. 야당은 원 전 원장의 이 같은 글이 국정원 직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금지한 국정원법을 위반했다는 증거이자,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여당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 전 원장의 국정원법 위반 혐의가 인정될 경우 여파는 국정원 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검찰이 원 전 원장의 개인비리에 대해 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매우 높다. 원 전 원장 재임 중 조직 운영 스타일에 불만을 품은 직원들이 적지 않아 각종 제보와 진정이 쏟아질 가능성도 크다. 국정원 자금 문제에 대해 칼을 들이댈 수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원 전 원장과 관련된 비리 첩보를 특별수사팀이 이미 상당부분 확보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어 수사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번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검찰 수사는 특별수사팀 구성만 봐도 강도 높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총괄 지휘를 맡게 될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 내정자는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의 후보 매수 사건을 처리한 정통 공안검사다. 팀장에 내정된 윤석열 특수1부장은 과거 현대자동차 비자금 수사 및 LIG그룹 오너 횡령 사건 등 대형수사 경험이 풍부한 특수수사의 달인으로 평가받는다. 수사팀에 공안검사뿐 아니라 특수검사가 포함된 점은 이번 수사가 송치사건과 고발사건 처리에 국한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검찰 주변에서는 그 동안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해온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원 전 원장의 횡령 의혹도 수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검찰이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특별수사팀 카드를 꺼내 든 것은 그 만큼 납득할 만한 성과를 낼 자신이 있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예인력을 동원해 대규모 수사팀을 꾸리고도 별다른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채동욱 검찰총장 취임 후 사실상 첫 작품이기 때문에 '히든 카드' 없이 섣불리 뛰어들었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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