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벽은 높았다. 제자는 정상 문턱에서 고개를 숙였지만 차분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문경은(42) SK 감독은 17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4차전을 마친 뒤 유유히 코트를 빠져나갔다. 반대로 우승을 차지한 유재학(50) 모비스 감독은 코트 중앙에서 헹가래를 받았다. 두 사령탑의 희비가 극명히 대조된 순간이었다.
이번 챔프전은 프로농구 사상 최초로 사제지간 사령탑 맞대결이 펼쳐졌다. 유 감독은 문 감독의 스승이다. 유 감독은 은퇴 후 1991년 연세대 코치로 부임해 문 감독을 3년간 지도했고, 2001년부터 3년 동안 전자랜드(전신 SK 빅스 포함)에서도 감독과 선수로 지냈다.
문 감독은 올 시즌 지도자 데뷔 첫 해 44승10패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챔프전에서 내리 4연패해 통합 우승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문 감독은 "유 감독님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이번 챔프전을 통해 비싼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유 감독님은 내가 선수 시절 때 봤던 세밀함과 과감함이 그대로다. 체구도 작으면서 듬직하고 선수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모습을 배워야 한다"면서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살려 강한 팀으로 만드는 점은 앞으로도 많은 조언을 얻어야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형님 리더십'으로 끌고 왔다면 이제 명문 팀으로 가기 위해 단단한 규율로 강하고 무서운 농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문 감독은 이번 챔프전을 천천히 돌이켜 본 후 "우리는 잘하는 것만 하려고 했다. 김선형과 애런 헤인즈가 잘 풀리니 그 쪽에 치중했다. 그러나 챔프전에서 두 명이 막히니 힘든 경기를 했다. 반면 모비스는 양동근이 안 되면 김시래, 문태영 등 차선책이 많았다. 다음 시즌에는 다양한 옵션을 준비해야겠다"고 강조했다.
문 감독은 당분간 휴식을 취하면서 다음 시즌 구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혼혈 선수 영입 우선권이 있어 문태종 또는 네덜란드 리그에서 뛰는 데이비드 마이클스 중 심사숙고 해 영입할 방침이다. 다음 시즌 목표는 이번에 실패한 통합 우승이다.
스승인 유 감독도 2005~06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하고도 챔프전에서 2위 삼성에 4연패로 우승을 내줬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 더 독한 모습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문 감독도 내년에 이 모습을 꿈꾸고 있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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