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전성시대라고 하는 오늘날, 수십 년 전만 해도 누구도 모르던 저작권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이제는 목 위의 칼날처럼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시대에 살다 보니 네가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해졌단다. 그래, 모두들 말하더구나. 저작권을 보호해 주지 않으면 창조적인 컨텐츠가 생산되지 않고, 결국 나라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맞는 말이지. 몸으로 만드는 것의 가치는 인정해 주지만 머리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나부터도 화가 난단다.
그런데 말이다. 너 저작권은 정말 대가가 크지 않으면 태어나지 않는 존재니?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라는 불후의 명곡을 쓴 바흐가, "이 악보를 향후 70년, 아니 사후 70년 동안 팔아서 돈을 벌어야지. 만일 저작권 보호 규정이 없으면 난 이 곡을 안 썼을 거야" 하고 중얼거렸을까?
류성룡 선생은 임진왜란으로 짓밟힌 조국과 고통 속에 죽어간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다시는 이런 수모를 겪지 않도록 죽기 전에 후손들에게 교훈을 남겨야지" 하며 을 쓴 걸까, 아니면 "이 책을 많이 팔아서 임진왜란 때 피해본 것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고 나아가 후손들에게 한 몫 단단히 잡게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썼을까? 를 쓰신 김구, 의 저자 괴테, 으로 인류 역사를 바꾼 찰스 다윈, 그 외에도 코페르니쿠스, 고흐, 일연 스님, 박지원.
난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어. 창조의 성과물이 대가, 즉 돈 때문에 태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인류의 발전을 위해 온 삶을 바친 참된 인간들이 대가는 고사하고 목숨이 위험하다고 해도 전하고야 마는 존재인지 말이다.
오늘도 수많은 책, 소리, 그림, 사진이 탄생하고, 탄생하는 순간 저작권이라는 권리가 자동으로 주어지고 있지. 저작권, 자동으로 주어지는 권리. 아마 인간의 권리 가운데 저작권처럼 쉽게 주어지는 권리도 드물 거야. 참정권, 평등권, 생존권을 획득하기 위해 우리 선조들이 바친 목숨과 피를 생각하면 온몸에 전율이 흐른단다.
그런데 넌 어디서 탄생한 거니? 그것 또한 참 궁금하단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사진에도 저작권이 있더구나. 온 몸을 바쳐 피라미드를 세운 이집트인들의 저작권은 그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으면서 그걸 사진에 담은 비싼 사진기 소유자들의 저작권은 목숨 걸고 인정해 주는 사회. 굶주림에 시달리다 고작 38세에 죽은 모차르트의 곡을 단지 연주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연주자들, 지휘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반면 모차르트는 사후에도 버려져 지금 그의 묘조차 남아 있지 않다지.
책? 그래 한 권의 책에 우리 선조들의 사상이 담기지 않은 경우가 있을까? 그런데도 대가를 주지 않으면 인류 문명을 한 단계 진전시킬 책이 탄생하지 않는다고 우기는 너를 보는 것은 참으로 괴롭지만 한편으로는 가소로운 일이기도 하단다.
요즘은 법조인의 가면을 쓴 장사치들이 앞장서 저작권 침해 사례를 샅샅이 찾아내, 순진한 저작권 소유자들을 부추겨 합의금을 뜯어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더구나. 다행스럽게도 양식을 갖춘 분들이 나서 추락한 네 명예를 되살리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계시기도 하지. 카피 기프트니 카피 레프트니, 저작권 공유 운동이니 하는 식으로 표현하지만 본질은 모두 같은 것이겠지.
저작권을 합리적인 수준에서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보의 자유로운 교환과 문명의 교류, 나아가 인류 공통의 자산을 개인적 치부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비합리적이고 독단적인 행태만은 방지하자는 의도 말이다.
저작권아! 네가 아무리 소중한 권리라 해도, 그 권리가 그리 쉽게 주어지고 그걸 이용해 돈벌이가 될 때만 네가 인간에게 의미를 가질 거라는 생각은 버리렴. 누가 뭐래도 인간의 진보, 문명의 진보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직 인간을 신뢰하며 이웃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선현들의 몫이니 말이다.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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