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외환위기가 본격화하기 직전인 1997년 5월 15일. 태국 정부는 상어떼 같은 국제 환투기 세력들의 집요한 바트화 공격으로 절명 직전 상황까지 몰렸다. 헤지펀드들이 가치를 떨어뜨리려고 시장에 쏟아낸 바트화를 중앙은행이 보유 달러를 써서 허겁지겁 매입하는 날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태국의 가용 외환액은 1개월 만에 230억 달러에서 25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더 이상은 바트화를 사들일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 특단의 조치가 나왔다. 외국인 바트화 대출을 금지하고, 역외금융시장에서 바트화 대출금리를 단숨에 1,000%까지 올려버렸다. 매도를 위해 바트화를 잔뜩 대출한 환투기 세력들로서는 바트화 하락에 따른 기대 환차익에 비해 대출이자 부담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일단 대출부터 갚아야 했다. 이 때 투기세력들은 6억 달러의 손실만 입고 물러가는 듯 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도 잠깐, 투기세력들은 이내 대대적 공세를 재개해 7월 2일엔 드디어 태국 중앙은행의 항복을 받아낸다.
■ 태국이 바트화 방어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돌아섬으로써 바트화의 자유낙하가 시작된 이날이 결국 아시아 외환위기의 첫날이 됐다. 당시 투기세력들이 바트화 공격에 주로 쓴 방법이 공매도(空賣渡ㆍshort sales)다. 현물 없이 일단 바트화를 매도해 달러를 산 후, 현물환 인도에 2영업일이 소요되는 점을 이용해 역외금융시장에서 바트화를 빌려 결제하는 식이었다. 대출상환까지 바트화가 30% 절하되면, 이자 빼고도 절하폭 대부분이 투기세력들의 이익으로 귀결됐다.
■ 이런 식의 공매 투기는 통화뿐 아니라 주식과 채권 같은 유가증권 거래에서도 보편적으로 일어난다. 적잖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활성화하는 순기능 때문에 공매 자체는 세계적으로도 정상거래로 허용된다. 최근 국내 코스닥기업 셀트리온의 회장이 회사 주식에 대한 공매도 공세에 시달리기 싫다며 보유 주식을 모두 외국에 팔겠다는 충격적 선언을 했다. 마음고생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주가관리가 힘들다고 사업 자체를 접겠다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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