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한국 탁구에 수비형들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달 초 열린 2013년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에서 수비형 강동수(KGC인삼공사)와 서효원(한국마사회)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강동수는 차세대 주자 후보 중 유일하게 개인 단식 16강에 진출했고, 서효원은 여자부 단식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 경쟁력을 뽐냈다. 수비형이 한국 탁구에 희망의 빛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수비의 달인' 주세혁(33ㆍ삼성생명)이 후배들에게 뼈 있는 제언을 건넸다.
국내 경쟁력이 곧 세계 경쟁력
주세혁은 국제무대에서 가장 성공한 수비형 선수다. 남자 탁구 단식 최초로 세계선수권 준우승을 차지했고, 국제탁구연맹(ITTF) 랭킹 5위까지 올랐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은메달 쾌거의 주역인 주세혁은 지금도 가장 경쟁력 있는 수비형으로 인정 받고 있다. 드라마틱한 경기를 연출하고 세계적으로 희귀한 전형이기 때문에 팬들도 가장 많다. 주세혁은 국제 경쟁력과 인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선수라 수비형들의 롤모델로 꼽히기도 한다.
18일 제59회 전국남녀 종별탁구선수권이 열린 충북 단양 국민체육센터에서 주세혁을 만났다. 최근 수비형의 호성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주세혁은 "국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선수들이 수비형을 가장 잘 다룬다. 따라서 끈질긴 국내 선수들과 좋은 경기를 펼친다면 국제 경쟁력은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선수를 세계로 나가기 위한 훈련 파트너 혹은 타깃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수비형의 선결 조건 '두뇌'
주세혁은 수비형의 성공 조건을 '두뇌'로 꼽았다. "수비형을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게 머리다. 수비형은 작전으로 경기를 이겨야 하기 때문에 두뇌 회전이 빨라야 한다." 강동수와 서효원은 '지능형'이라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주세혁은 "(강)동수와 (서)효원이는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은 것 같다. 경기를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는데 경기 운영 능력이 다른 수비수들보다 빼어나다"고 높이 평가했다.
수비형은 '만수'로 불리곤 한다. 그만큼 두뇌 회전이 빠르다는 의미. 주세혁은 "서브권을 가지고 있을 때 작전이 더 많아진다. 기본적으로 서브를 할 때는 3, 4가지를 생각하고 3구를 기다린다"라고 털어놓았다. 주세혁은 경험과 비디오 분석이 국제 경쟁력을 키우는 또 다른 열쇠라고 말했다. 그는 "선수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직접 부딪혀 보고 깨달아야 한다. 경험이 쌓이면 상대를 요리하는 요령이 생길 것"이라며 "상대 파악을 위해 철저하게 비디오 분석을 해야 적응을 빨리 하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공격 본능에 대해선 절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먼저 무리한 공격을 하면 반드시 꼬이게 돼있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넘어가는 동작이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공격형들이 연습하는 대로 연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까지 공격력이 약한 강동수는 "세혁이 형은 공격형처럼 스매싱과 드라이브를 구사한다"며 존경을 표했다.
'마라톤 탁구' 아들은 NO
수비형 탁구를 흔히 '마라톤'으로 표현한다. 주세혁은 "랠리가 길어지면 한 서비스에 70구 이상 가기도 한다. 이로 인해 한 경기를 뛰고 나면 마치 마라톤을 한 것 같다. 저녁이 되면 2㎏이 쏙 빠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며 수비형의 비애를 털어놓았다. 가장 까다로운 스타일은 연결력이 좋은 유형으로 정영식(KDB대우증권)이 대표적이다. 그는 "영식이와 할 때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간다. 가장 버겁지만 반대로 이길 때 가장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상대"라며 "랠리를 많이 한 경기에서 승리하면 경기 장면을 다시 비디오로 봐도 긴장되고 짜릿함이 밀려 온다"라고 웃었다.
그렇지만 8세 아들에게는 수비형은 안 시킨다고. 주세혁은 "만약 아들이 탁구를 한다면 수비형은 피할 것이다. 수비형은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하는 경기라 짜증날 때가 많고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또 13구 촉진제 룰로 인해 수비형이 공격형보다 불리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주세혁 세대 때는 수비형이 드물어 설움을 받았던 기억도 많다. 그는 "훈련 기간에 수비형들은 코칭스태프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게 사실이다. 모든 게 공격형 위주로 돌아간다. 또 주위에서 큰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서운했던 적이 있다"며 고독한 싸움에 대해 표현했다.
수비형의 가능성에 대해선 자신 있게 소리쳤다. "2007년, 2009년 베스트 상황이었을 때 마롱과 장지커를 연속으로 이겼다. 수비형들이 기술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공격력도 가미된다면 충분히 단판 승부에서 중국의 '만리장성'을 넘을 수 있다."
단양=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