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MBC TV의 ‘아빠! 어디 가?’ 프로그램이 인기다. 아니, 어떤 점에서는 이미 절정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모든 TV프로그램의 운명이기도 하지만 방영횟수가 늘어날수록 신선도가 떨어지고, 귀엽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행동이 정형화하기 때문이다.
‘아빠! 어디 가?’에 출연하는 아이들 중에는 CF에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인기가 있는 출연자를 기업이 가만 놓아둘 리가 없다. 4월 14일 방송된 MBC ‘섹션TV 연예통신’에서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성동일-성준 부자의 광고 촬영 현장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런데 ‘연예통신’ 프로그램은 성동일에게 아들의 유명세가 언제나 좋은 건 아니었다고 보도했다. 그가 CF촬영을 할 때 “남들이 자신을 많이 알아본다는 것을 준이도 알기 시작했다”며 “아들이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하는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방송 출연 이후 달라지고 있는 아들에 대해 아버지로서 당연한 걱정이었다.
그런데 그게 왜 유명세인가? 요즘 신문 방송 잡지는 유명세라는 말을 남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청남대가)명실상부한 국민 관광지로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벚꽃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그는 이 영화 출연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는 홍성의 명산 용봉산이 유명세를 타면서 외지 산행객이 부쩍 늘어...”, “독일에서 섭식 문제 심리치료 전문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저자 마리아 산체스는....”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이런 문구를 쓰는 사람들은 아마도 유명세라는 말을 유명세(有名勢)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상승세나 우세처럼 기세를 뜻하는 말, 즉 인기나 이름값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유명세를 타고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거나 “유명세와 관계없이 일반인과 똑같은 기준을 적용할 것이다.”라는 말을 하는 거겠지.
하지만 유명세는 有名稅다. 유명해져서 겪게 되는 피해나 불편 곤욕, 이런 걸 말하는 단어다. 세상에 세금 내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유명해지면 세금을 내야 한다. 소득 증가로 인해 실제 세금이 증가하기도 하지만, 피해나 불편이라는 세금이 새로 생기는 것이다.
유명해진 사람은 아무데나 갈 수 없다. 함부로 행동해서도 안 된다. 집 앞에는 팬들이 늘 찾아와 소란을 피운다. 인기도 좋지만 성가시고 짜증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연예인들은 스스로 ‘공인’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유명인사는 공인의 자세를 지켜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늘 언동을 조심해야 하고 팬들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웃으며 참고 견뎌야 한다. 이런 게 다 유명세다.
유명세가 이런 뜻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면 “성동일에게 아들의 유명세가 언제나 좋은 건 아니었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아들의 유명세를 걱정했다고 한다면 말이 된다. 다만 그렇게 걱정을 해야 할 만큼 실제로 유명세가 큰지, 불편한 게 많은지는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유명세를 탄다”고 말하지 말라. 유명세에 시달린다, 유명세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거나 지긋지긋한 유명세, 이런 식으로 말해야 옳다. 특히 언론사 종사자들이 조심하고 주의해야 한다.
유명세의 오ㆍ남용을 방지하지 않으면 우리 언어가 중병을 앓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번질 수 있다. 제대로 뜻을 모르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하면 어찌 될까? 아마도 유명해져서 유명세에 시달리게 되지 않을까?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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