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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북한문제, 담담하게 관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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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북한문제, 담담하게 관리하기

입력
2013.04.1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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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 고향은 함남 이원(利原)이다. 전쟁 전 단신으로 38선을 넘었다. 실향민이 대개 그렇듯 아버지도 평생 지독한 보수반공주의자였다. 가족을 풍비박산 내고 인륜마저 끊은 '북한 놈'들은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말종이었다. 그런 자들한테 이것저것 줘가며 비위 맞추려 들었던 김대중ㆍ노무현은 똑같은 빨갱이였다.

그런 아버지에게서 얼마 전 귀를 의심할 만한 말을 들었다. "어떻게든 북한하고 만나 얘길 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안 하면 되나…." 심지어 김대중이 애썼고, 이명박은 잘못했다는 투의 얘기까지 나왔다. 스물 전에 떠나온 아버지는 아흔이 다 돼 생각이 바뀌었다. 여생의 초조함 때문일 것이다.

실향민의 아들로 느끼는 감정은 각별하지만, 사실 북한문제는 늘 짜증나는 주제다. 수십년 똑같은 양상의 반복인 때문이다. '위협→도발→대치→협상→보상→다시 위협→도발'로 끝없이 이어지는. 지난 12월 장거리로켓 발사와 올해 2월 3차 핵실험으로 촉발된 지금의 위기도 하등 다를 게 없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무성한 진단과 해법들도 같다. 확실하게 본때를 보여 악순환의 고리를 끊거나, 대화와 협상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두 가지의 지겨운 재탕이다. 전자는 리스크를 감당키 쉽지 않고, 후자는 부질없는 희망임이 수없이 입증된 바다.

어디 우리가 안 해 본 방안이 있던가. 소떼를 끌고 가고, 금강산관광을 하고, 개성공단을 열었을 때도 서해에서 수 차례 따귀를 맞았다. 2차 북핵위기도, 대포동미사일 발사도, 첫 핵실험도 그 때였다. 버릇을 고치겠다던 MB 때 북한의 태도 역시 더 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딱 그대로였다. 협상방식으로도 남북, 북미 간 양자대화서부터 4자회담, 6자회담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결과는 지금 경험하는 그대로다.

북한은 김일성 생전인 1990년 동구권 붕괴 전후로 핵을 체제유지와 생계 수단으로 분명하게 선택했다. 마침내 어렵게 이를 성취한 마당에 이를 되무를 가능성은 전혀 없다. 북한에게 이미 핵은 어떤 대가와도 바꿀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싫지만 이걸 인정하지 않고는 어떤 논의도 현실적이지 않다.

다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담담하게 대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어차피 핵은 쓸 수 없는 무기인데다, 확산은 각자 이해가 걸린 주변국과의 공동관리에 맡기면 될 일이다. 정작 중요한 건 우리 스스로의 관리다. 북한의 일거수 일투족에 호들갑이나 지나친 위기의식 조장은 북한정권만 고무시킬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압도적인 경제ㆍ군사적 실력을 바탕으로 사안별로 원칙 대응하면 된다.

최근 개성공단에 국한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화 제의는 그런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전 같으면 또 대화냐 압박이냐는 무의미한 양자택일을 고심했을 것이나, 이런 식의 거대담론을 제쳐두고 당장 가능한 문제에 눈을 돌렸다. 현 상황에서 안 되면 도리 없고, 된다면 이후 좀더 큰 문제로 차근차근 옮아갈 수 있을 것이다.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남북 모두를 담담하게 관리하는 전혀 새로운 접근법이다. 남남 갈등의 여지도 줄이고, 북한도 고민케 하는 방식이다. 당장은 북한이 거부했지만, 위험한 4월이 지나면 상황호전의 단초는 개성공단문제 해결 같은 '작은' 분야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북한의 변화는 성급한 대화와 압박 같은 외력을 통해서는 결코 이뤄지지 않는다는 건 경험을 통해 충분히 배웠다. 변화의 동인은 오직 북한 내부에 있다. 실망할 건 없다. 어떤 기준으로도 북한체제는 현 세기에서 지속가능한 구조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는 시간일 뿐이니까. 그때까지 안전하게 우리 스스로를 관리하며 준비하면 될 일이다.

누구에겐들 고향만한 곳이 있으랴마는 내 아버지 고향은 통일부 자료에도 북한 동해안 최고 경승지로 소개될 만큼 아름다운 곳이란다. 아버지는 오늘도 망연히 앉아 고향 바닷가 솔밭을 하염없이 거닌다. 마음은 아프지만, 남북관계에서 조급해 될 일은 없으니.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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