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외모가 중요한 직업과 실력이 중요한 직업을 친구들과 상의해 적어 넣으세요.”
1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숭인중학교 1학년 교실. 언어의 본질과 기능에 대해 수업하던 고경애(45) 국어 교사는 아이들을 5, 6명씩 조를 짜고 조별로 종이 2장과 유성매직을 나눠주며 말했다. ‘미인’이 과거에는 재주와 덕행이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다 최근 외모가 예쁜 사람을 일컫는 뜻으로 변화한 것처럼 언어가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 뒤였다. 학생들은 외모가 중요한 직업으로 연예인, 모델, 레이싱걸, 배우 등을, 실력이 중요한 직업으로는 외교관, 과학자,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등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5분쯤 지나자 수십 개의 직업이 종이에 빼곡히 채워졌다. 고 교사는 다양한 미래의 기술과 직업군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보여준 뒤 “미인의 기준이 변했듯 미래에 다양한 직업들이 생기고 또 바뀔 텐데, 여러분들이 직업을 가질 때 적절한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핵심공약으로 내세운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 연구학교로 지정된 숭인중의 수업 모습이다. 이 프로그램은 성적ㆍ입시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중1 학생들에게 진로ㆍ직업 교육을 강화해 자신의 미래와 진로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주자는 취지에서 지난달부터 시작됐다. 교과목마다 직업과 관련된 내용을 알려 주는 교과연계 진로수업과 직접 직업체험을 하는 과정으로 이뤄져 있고, 수행평가로 중간고사를 대체한다. 황유진 연희중 교사는 “진로 탐색은 당장 성과가 나타나진 않지만 학생들이 장래에 직업을 선택할 때 잠재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교육청은 진로수업에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을 위해 과목별 연수를 실시하고 원격 연수를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해 보급하는 등 진로탐색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직업체험을 위한 일터 발굴도 기업들과 협조를 통해 차츰 수를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형식적인 교육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서울 강북지역의 A교사는 “교과연계 진로수업은 위에서 내린 틀대로 짜맞추기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중간고사를 보지 않는 것 빼고는 종전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또 체육처럼 직업 연계가 쉽지 않은 과목들에서 진로수업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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