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8일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여성 지도자가 서거했다. 무려 11년 동안 영국을 진두지휘하며 20세기 후반 쇠퇴하던 나라를 다시 일으킨 여성 총리,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가 바로 그다. 하지만 영국 곳곳에서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이 모여 샴페인을 터뜨리고 구호를 외치며 '사망 축하 파티'를 열고 있다.'대처의 유산'에 대한 평가를 놓고 국론 분열의 양상에 치닫고 있는 영국에서 그에 대해 극도로 양극화된 평가와 반응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KBS 1TV가 18일 방송하는 'KBS 파노라마'는 영국의 얼굴을 바꾼 '철의 여인'으로 평가 받는 마가렛 대처의 일생을 되돌아본다. 인플레이션이 20%를 육박하는 최악의 경제 불황으로 노조 파업이 지속되던 1979년, 마가렛 대처는 영국 최초로 여성 총리에 오르며 경제를 되살리고, 국가의 변화를 시도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한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대처의 개혁은 복지국가를 추구하던 기존 노동당의 정책을 뒤엎고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 그녀는 경쟁력을 상실한 채 국가 보조금으로 운영되던 석탄, 통신, 항만, 교통 등 국영기업 등을 과감히 민영화했다. 그리고 금리 인상과 공공지출 제한으로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녀의 정책은 집권 초기 경기 침체, 실업률 증가와 함께 대대적인 파업과 시위로 이어졌다.
하지만 대처는 흔들리지 않았다. 1959년 런던 북부 핀칠리 지역의 하원의원으로 선출되며 정계에 진출, 20년 간 각료생활을 하며 보수당 대표로 선출된 마가렛 대처는 작은 식료품 가게의 딸로 태어났다. 그런 그가 영국을 호령하는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탁월한 리더십과 흔들림 없는 '신념의 정치'를 펼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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