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결승선에 나타나기를 고대하던 소년은 즉사했다. 막 대회를 마친 마라톤 선수는 다리를 잃었다.
15일 오후 2시50분께(현지시간) 경기를 완주한 선수들과 가족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차 있던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 결승선 지점은 한 순간에 유혈이 낭자한 지옥으로 변했다. 두 차례 폭발음과 함께 사람들의 몸이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더니 피를 흘린 채 쓰러졌다. 잘려 나간 팔과 다리가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폭탄 안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볼베어링(둥근 모양의 기계부품)이 부상자들의 몸을 찢었다. 목격자들은 "전쟁 상황" "보스턴의 9ㆍ11"이라고 치를 떨었다.
피해 극대화 위해 일반 참가자 노려
테러는 대회가 시작한 지 4시간 9분 가량 지난 뒤 일어났다. 세계적인 선수들은 이미 결승선을 통과했고 참가자 2만3,000여명 중 1만7,580명은 완주한 상태였다. 현장에 있던 사람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 가족과 친구가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아마추어 마라톤 애호가와 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마라톤 코스 전체에 몰린 인파는 50만명에 달했다. 대회에 참가한 조쉬 콕스는 BBC방송에 "결승선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며 "거의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폭발 굉음이 "대포 소리 같았다"고 말했다. 폭발 굉음에 고막이 터진 사람도 많았다. 건물과 지반이 흔들렸다. 인근 호텔 바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스테파니 더글라스는 "사람들이 트램펄린(높이뛰기를 할 수 있는 그물망 놀이기구)에 있는 것처럼 튕겨져 오르는 게 보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순식간에 거리는 쓰러진 사람들과 피로 가득 찼다. 최소 10개 이상의 잘린 다리들이 보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여 사방으로 도망쳤다.
대회에 참가한 아내를 기다리던 앨런 팬터는 "첫 번째 폭발 장소에서 겨우 6~8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6, 7명의 사람들이 내 쪽으로 달려왔다"며 "그들이 나를 폭발로부터 보호한 셈"이라고 CNN방송에 말했다. 그는 "그들 중 여성 한 명은 사망했고 한 남성은 두 다리를 잃었으며 나머지도 모두 부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다리를 비롯한 뼈와 살에 파편이 꽂혀 살점이 떨어져 나간 부상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아 폭탄에는 금속 파편을 내는 유산탄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상자 중 20여명 상태 심각
이번 테러로 3명이 사망하고 170여명이 다쳤다. 20여명은 부상이 심각해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결승선을 통과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8세 소년도 희생됐다. 함께 있던 어머니와 누나도 부상을 입었다. 보스턴 어린이 병원에 실려간 부상자 명단에는 머리를 다친 두 살배기 남아와 다리를 다친 9세 소녀를 비롯해 15세 이하 어린이 6명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뉴욕타임스는 목격자를 인용해 "막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들 중에서도 다리를 잃은 사람들이 있다"고 전했다.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부상자를 구하려는 도움의 손길이 쇄도했다. 앞다퉈 헌혈에 나섰다. 선수들은 부상자들을 지혈하기 위해 자신의 유니폼을 찢었다.
병원은 부상자들로 야전병원 방불
부상자들이 실려간 보스턴 일대 병원은 아수라장이었다. 뼈ㆍ피부ㆍ혈관에 유산탄 파편이 박혀 절단이 불가피한 환자가 상당수다. 28명의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는 브리그햄앤드위민스 병원 측은 "9명은 팔과 다리를 절단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매사추세츠제너럴 병원으로 이송된 29명 중 일부는 볼베어링 제거수술을 받았다. 이 병원 외과전문의 피터 패젠홀츠 박사는 "볼베어링이 폭탄 부품의 일부인지 아니면 주변에서 날아든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14시간째 수술하고 있다"면서 "환자 일부는 팔,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코네티컷주 뉴타운의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 가족들은 폭발 당시 VIP석에 앉아 경기를 관람했다. 이들은 폭발 현장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앉아 있었으나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 인기 보이밴드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멤버 조이 맥킨타이어(41)는 "내가 마라톤을 완주한 지 5분 만에 폭탄이 터졌다"고 긴박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테러 당시 아직 완주하지 못한 5,500여명의 참가자들은 중간에 우회도로로 안내되거나 경기를 중단했다. 이번 117회 대회 남녀 부분 우승자인 에티오피아의 렐리사 데시사와 케냐의 리타 젭투 등 메달리스트들은 이미 시상식을 마치고 기자회견과 도핑테스트를 받던 중이어서 참사를 면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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