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이스하키 역사상 가장 극적인 승리였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1982년부터 지금까지 10번 맞붙어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헝가리(1무9패)를 상대로 31년 만에 승부치기 끝에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지난주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세계선수권 디비전 2 B그룹에서의 우승 기운을 이어 받은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16일 오전(한국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스포르트 아레나에서 열린 2013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 1 A그룹 대회 2차전에서 홈 팀 헝가리를 상대로 드라마틱하게 5-4로 승리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세계 랭킹 19위의 헝가리는 한국(28위)보다 한 수 위로 평가됐다. 헝가리는 대회 개막을 앞두고 치른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7-0의 대승을 거뒀고, 극성스럽기로 유명한 홈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까지 등에 업는 이점이 있었다.
경기 초반 대표팀은 예상대로 힘든 경기를 펼쳤다. 1피리어드 시작 2분6초 만에 라디슬라브 시코르신에게 선제골을 허용했고 3분39초에는 이스타반 바르탈리스, 13분44초에 야노스 하리에게 릴레이 골을 내주었다. 7,370명이 가득 들어찬 스포르트 아레나는 헝가리를 응원하는 함성으로 끓어 올랐다. 대표팀은 2피리어드에서 권태안(하이원)이 이번 대회 첫 골이자 만회 골을 터트렸지만 곧바로 상대에 추가골을 내주며 1-4로 점수차가 벌어졌다.
하지만 태극 전사의 투혼은 3피리어드부터 불이 붙었다. 3피리어드 시작 56초 만에 김기성(상무)이 김동환과 브락 라던스키(이상 한라)의 어시스트로 골을 터트리며 희망의 불씨를 되살렸고, 5분32초에 김원중(상무)이 신상우(한라)가 찔러준 패스를 밀어 넣어 1골 차로 추격했다.
결국 3피리어드 8분26초에 발라스 고즈가 2분간 퇴장당하며 잡은 파워 플레이 찬스에서 대표팀 '막내'가 큰일을 해냈다. 대표팀에서 유일하게 대학생인 신상훈이 3피리어드 9분21초에 박우상(상무), 이돈구(한라)의 어시스트로 동점골을 뽑아냈다. 그대로 정규 시간이 끝났고, 연장 피리어드 5분도 득점 없이 마무리됐다.
운명의 페널티 슛아웃(승부치기)에서 한국의 골문은 2피리어드 8분52초에 엄현승(한라) 대신 투입된 박성제가 지켰다. 한국은 1번 슈터 라던스키가 골을 터트리며 기선을 잡았다. 헝가리도 1번 슈터 마르톤 바스가 득점했다. 2번 슈터 신상훈과 발라스 라다니는 나란히 실패, 운명은 3번 슈터에서 갈렸다.
한국은 김기성이 상대 수문장 다리 사이를 노려 골을 성공시켰고, 골리 박성제는 헝가리 이스트반 소프론의 슛을 막아냈다. 순간 헝가리 홈 팬들로 가득 찬 경기장에는 침묵이 흘렀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모두 얼싸안고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IIHF 공식 홈페이지도 "'언더독(underdog·약자)' 한국이 헝가리에 악몽 같은 패배를 안겼다"며 "한국의 이번 승리는 새로운 역사"라고 대표팀의 역전 소식을 전했다.
이번 대회에서 디비전 1 A그룹 잔류를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는 대표팀은 17일 오후 7시30분 숙적 일본(22위)과 3차전을 벌인다. 일본은 16일 열린 이탈리아(16위)와의 2차전에서 1-4로 졌다. 카자흐스탄(17위)은 영국(21위)에 5-0으로 승리, 2연승을 달렸다. 한국은 잔류를 위해서는 남은 경기에서 1승 이상만 거두면 된다.
이재상기자 alexe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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