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담벼락 공중전화 뜯고 공중화장실 변기 밸브 싹쓸이도
“새벽 인력시장에 나갔다 허탕만 치니 울컥해 훔쳤어요.”
일용직 인부 이모(47)씨와 최모(44)씨는 지난달 19일 새벽 부산 부산진구 부암동 인력시장에 나갔다가 “일자리가 없다”는 말을 듣고 오전 6시30분쯤 돌아섰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처지라 막막하던 그들의 눈에 띈 것은 경찰 치안센터 담벼락에 설치된 공중전화기 2대. 두 사람은 들고 간 드라이버로 공중전화기 2대를 부스에서 분해한 뒤 통째로 들고 도망쳤다. 이들은 인근 자택에서 전화기를 분해한 뒤 다른 고물과 함께 1만 5,000원을 받고 고물상에 팔아 넘겼다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 불황의 여파로 팍팍한 생활을 못 이겨 돈이 되는 공공기물을 가리지 않고 훔치는 생계형 절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유행처럼 번지던 맨홀뚜껑이나 전선 등은 물론, 공중전화기와 밸브 등이 그 대상이다.
경남 고성에선 50대 남성이 공중화장실 변기 밸브를 싹쓸이했다. 권모(54)씨는 14일 오후 10시 30분 고성군 한 재래시장 여자 화장실 등 공중 화장실 16곳에서 480여만원에 달하는 변기밸브 88개를 훔치다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생계형 절도에 나서기는 고령층도 예외가 아니다. 2월 초 충북 청주에선 하수구 철판 덮개를 훔친 7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청주 흥덕경찰서에 절도 혐의로 붙잡힌 A(79)씨는 1월 10일 오전 충북 청주시 흥덕구 한 음식점 인근 도로에 설치된 5만원 상당의 10㎏짜리 하수구 철판 덮개 1개를 훔쳐 고물상에 2만원에 넘겼다. 그는 수년간 하루 2∼3시간씩 폐지를 모아 판 돈으로 아내와 사글셋방에서 어렵게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경찰에서 "하수구 철판 덮개가 폐지보다 돈이 더 될 것 같아 손을 댔다"고 말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08년 22만3,000여건이던 절도 발생 건수는 지난해 29만여 건으로 4년 새 6만7,000건 이상 늘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피의자의 60% 이상이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으로 생계형 절도범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현대판 장발장이 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사회안전망이 부실하고 사회가 불안정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부산=강성명기자 smkang@hk.co.kr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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