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지상 18층 높이의 한 오피스텔 건물 공사 현장. 광화문에 위치한 이 건물은 2002년 이후 12년째 공사가 멈춰있는 상태로, 건물 내부 공사현장에는 오래된 건축자제와 임시 컨테이너 박스 등이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10년째 인근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장모(42)씨는 "건물 앞을 지날 때 마다 노숙인들이 건물 내부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보곤 한다"며 "관리를 하는 사람도 전혀 없는 것 같고 밤에는 길을 지나가기가 겁날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 지상 20층 높이의 또 다른 건물 건축 현장. 서울 IT산업의 허브격인 테헤란로 변에 우뚝 서 있는 고층 건물 또한 철골 뼈대만이 앙상한 상태였다. 1993년 2월 건축허가가 떨어져 건물 골조가 세워지고 연면적 4만5,736.93㎡(약 13,860평)의 터가 조성됐지만 공사가 시작된 후 5년만인 98년에 공사가 다시 중단돼 15년 동안 방치되고 있다. 강남구청과 시공사는 건물 주변을 높이 3m짜리 철근 펜스를 쳐 놓은 상태지만 펜스 틈으로 들여다 보이는 건물 현장 내부는 건축 자제와 쓰레기 등으로 가득했다. 특히 강남 8학군과 인접해 학부모들과 교사들에겐 이 일대가 학교폭력 등 범죄를 유발하는 우범지역으로 악용되지 않을까 경계 1호로 꼽힐 정도이다. 인근 학교에 두 자녀가 다니는 김모(47ㆍ여)씨는 "언젠가 공사 현장 주변을 지나다가 펜스 사이로 안을 들여다 봤는데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것 같았다"며 "밤늦게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고 범죄 장소로 이용하려고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곳 같아 보였다"고 지적했다.
서울 시내 도심 곳곳에 장기간 공사가 중단되어 흉물로 방치된 건축현장이 도시미관 훼손을 물론, 범죄와 탈선의 장소로 이용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으로 전국에 5년 이상 공사가 중단돼 공터로 방치되거나 폐허로 전락한 곳이 330여 곳으로 집계됐다. 이 중 서울도 26곳에 달했다. 최근 강원도와 전북 전주시 등의 도심 내 방치된 공사현장에서 각종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공사가 중단된 건물공터 부지에 대한 안전관리와 정비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야간 순찰이나 방범활동 대상지를 정할 때 관할 내 공사가 중단된 구역을 정해 놓고 순찰을 하긴 하지만 펜스 너머까지 경찰력이 관리하기란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따르면 공사중단 장기방치 건축물의 정비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안이 지난 2월 국회 국토해양위 전체회의를 통과해 현재 심의ㆍ의결 중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골자다. 국토부 관계자는 "2년 이상인 건축물을 '공사 중단 건축물'로 규정하고, 공사 중단 건축물에 대한 실태조사와 정비계획을 수립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중단된 공사 현장을 시ㆍ도지사나 지자체에서 판단해 새로운 사업자에게 사업권을 넘기거나 지자체에서 매입 또는 건물을 헐어버리는 방안 등이 담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건축허가를 담당하는 시와 구청측은 이 같은 법안이 실효성이 없다며 냉랭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서울 한 구청 담당자는 "10년 이상 공사가 중단된 건축물의 경우 90%이상이 소유주간, 소유주와 시공사간의 이해관계에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라며 "행정기관에서는 이들 사이에서 사업을 강제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특히 서울의 경우 수십억에서 수백억 대의 대규모 개발 사업이 대부분"이라며 "공사가 오랜 기간 지연되는 이유 가운데 대부분이 소유권이나 공사대금 문제 등으로 법원의 민사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판결을 기다리는 경우"라고 말했다. 시 관계자 역시 "공공건물이 아닌 이상 시에서도 공사가 중단된 건축물에 대해 직접 개입하기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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