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한풀 꺾인 듯한 분위기이지만 지난 주까지도 남북한이 여차하면 국지전이라도 벌일 듯 위기감이 높았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핵실험도 여러 차례 했지만 이번 긴장감은 과거와 다른 듯 하다.
그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시장의 반응이다. 북한의 도발 행위가 있을 때마다 주가가 요동치는 것은 적어도 2000년대 들어서는 거의 없었다.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때도 매수세가 유지되면서 주가는 약보합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 조짐에 개성공단 갈등까지 추가되면서 4월 들어서 주가가 거의 계속 하락세다. 국제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고 관광이나 항공산업 등 지정학적 위기에 민감한 산업들에도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증권사의 투자 분석 보고서들이 지적하는 대로 '과거와 달리 공격 범위와 대상, 통제력에 대한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김정은 체제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하지만 투자 심리가 나빠지고 예전과 다른 불안감이 조성된 직접적인 원인의 상당 부분이 언론 보도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지난 3일 CNN 같은 경우다. 그날 CNN은 전황도를 연상하게 하는 그래픽을 화면 가득 보여주면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설명했다. 해설을 위해 전문가까지 참석시킨 그 방송에서는 "북한이 도발할 경우 주한미군과 함께 주일미군, 괌의 해군 폭격기 등이 우선 북한에 진입할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반복했다.
CNN만 그런 건 물론 아니다. 해외 주요 언론들이 전쟁 전야라도 맞은 것처럼 특파원을 파견해 한반도 상황 변화를 실시간 중계한다. 최악의 상황을 염려하고 준비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선정적으로 떠벌려 불필요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는 유쾌할 리 없다.
한반도에서 국지전이나 전면전이 발발할지 아닐지 장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후자는 우선 지금까지 말로 해온 위협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직면해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북한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역시 "한 민족인데" 하는 동포의식도 적지 않게 작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CNN에 출연해, 굳이 한국말로 김정은에 한 말씀 해달라는 부탁에 답해 들려준 메시지는 감동적이었다.
또 하나, 싸이가 '강남스타일' 후속곡을 선보이는 대형 콘서트 직전 기자회견에서 영국 기자의 질문에 답한 것도 인상적이다. 싸이는 한반도가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것은 "비극"이라면서도 "내 일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웃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싸이의 신곡 '젠틀맨' 콘서트의 대미를 장식한 '위 아 더 원' 뮤직비디오 시작 장면에 이런 장면이 있다."우리 조선인민공화국의 전사들이 2010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습니다.(짝짝짝 박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16강 진출에 열화 같은 성의를 보여야 된다~ 이 말씀입니다." 월드컵 승리를 위한 북한 군 수뇌부의 작전회의 모습이다. 그때 한 참석자가 제안을 한다. "아 고조 다른 진출국 선수들의 다리를 사정 없이 뽀샤 버리지요. 아 그냥 16개국만 뽀샤 버리면 그게 쉽지 안갔습네까." 그러자 불편한 안색으로 듣고 있던 장군이 고개를 까딱한다. 쟤 들어내라는 신호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면 지하세계(지하감옥)에 갈 수 있습네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책임이 있는 지도자 김정은에게 싸이의 이 뮤직비디오 챙겨 보길 권한다.
김범수 문화부 차장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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