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폐손상으로 10명이 숨지는 등 34건의 피해가 공식 확인된 지 2년이 됐지만 여전히 인과관계 규명도, 피해 구제도 지지부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관계부처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느라 빚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피해 사례를 접수하고 역학조사 등 인과관계를 규명해왔던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폐손상조사위원회를 발족하며 추가 피해사례 357건을 접수 받았지만 추가 보완조사는 환경부 소관이라며 발을 빼는 모습이다. 폐손상조사위 민간위원들은 지난 3월 "접수 사례의 정확한 판정을 위해선 폐CT촬영 등 추가 조사 필요하다"고 요구했지만 복지부는"화학물질에 따른 건강영향조사는 환경부 소관으로 (조사를) 지원한 법적 근거가 없다"며 공을 환경부로 넘겼다. 이에 (폐손상조사위)민간위원들은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며 최근 복지부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재작년 원인 모를 폐손상으로 환자 다수가 입원했다는 병원 신고를 받을 때만 해도 감염병으로 알고 역학조사를 실시했다"며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라 지원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반면 환경부는'복지부가 이미 손댄 사안인데다 공산품 관리는 산업통상자원부(옛 지식경제부) 소관'이라는 이유로 뒷짐을 지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원료 물질의 유해성 조사 등은 하고 있지만 지난해 말 가습기 살균제 피해의 환경성 질환 지정이 무산돼 소송을 거치지 않고서는 사실상 지원이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업부는 가습기 살균제의 성격이 공산품에서 의약외품으로 바뀌어 식품의약품안전처 소관이 됐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들 업무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가습기 살균제는 (산업부) 관리대상품목이 아닌 것으로 정리가 됐다"며 "문제가 된 업체들에 책임을 묻거나 제재를 하려 해도 업체 측에선 '판결이 나오면 그에 따르겠다'며 반발해 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원인규명과 피해구제에 책임이 있는 부처들이 이처럼 먼산만 쳐다보는 사이 피해자들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 피해자들이 제조업체를 검찰에 고발해 수사가 진행됐지만 검찰은 보건당국이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수사를 시한부 중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 피해자는 "업체를 대상으로 한 사법처리와 그에 따른 민사소송이 언제 이뤄질지 기약이 없어 속앓이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재작년 총리실 중심으로 구성된 TF팀도 흐지부지될 정도"라며 "박근혜 정부가 부처 칸막이 해소를 강조한 만큼 이제라도 총리실을 중심으로 각 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여야 의원 27명은 지난달 말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총리실에서 총괄하고 환경부가 중심이 돼 타 부처와 피해자구제방안을 마련하는 내용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규제를 위한 결의안'을 발의하는 등 정치권은 뒤늦게 피해 구제책을 내놓았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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