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50일이 된다. 굳이 명암(明暗)의 비율을 따지자면 밝은 쪽 보다는 어두운 쪽이 더 많았던 50일이다. 어느 정부든 첫 걸음이 쉬울 리 없지만 박근혜정부의 첫 걸음은 유달리 힘겨워 보였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의당 해야 할 일부터 꼬였다. 조직을 다시 꾸리고 새로운 사람을 앉히는 일에서부터 애를 먹은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신설 등을 골자로 한 새 정부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회 제출 52일 만인 지난달 22일에야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여야가 가파르게 대치하면서 전례 없이 처리가 늦어졌다. 정부 부처는 개장 휴업했고, 각종 개혁 정책과 공약 추진은 그 만큼 탄력을 잃었다.
'방송 장악'논란이 표면적 이유였지만 근저에는 '소통 부재'가 자리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취임 1주일 만인 지난달 4일 대국민담화까지 내놓았지만 매듭을 풀기보다 꼬이게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소통 부재 논란은 50일 내내 박 대통령을 따라 다녔다.
잇단 인사 실패도 박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했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를 시작으로 차관급 이상 고위 관료 6명이 낙마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 여론에 밀려 지난달 30일 김행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유감을 표명했지만 도리어 '17초 대독(代讀)사과'라는 역풍만 맞았다. 인사 실패는 아직 진행형이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 여당 내에서조차 자질 부족을 지적하며 자진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새 정부의 장관이 모두 참석한 국무회의는 아직 열리지 못했다.
소통 부재와 인사 실패는 따로 떼놓고 볼 수 없다. 인사 실패의 책임은 박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하향식 인사 시스템에서 찾아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다시 말해 인사에서 소통 부재가 인사 실패로 귀결됐다는 얘기다. 결국 문제는 소통이었다.
그런 면에서 박 대통령이 최근 여야 정치인들을 잇달아 청와대로 불러 함께 식사하면서 "여러분의 얘기에 귀 기울이겠다"고 말한 것은 나름 희망적이다. 박 대통령이 소통에 나선 신호로 읽히기 때문이다. 정치평론가 황태순씨는 "소통과 스킨십을 강화해 민심과 여론에 귀를 더 많이 기울이는 열린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부 문제에 비해 외부적 문제는 간단찮은 난이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잘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정식 취임도 하기 전에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북한은 이후 정전협정 백지화ㆍ전시 상황 돌입 선언, 개성공단 폐쇄, 미사일 발사 위협 등으로 긴장 수위를 단계적으로 고조시켜 왔다. 하지만 헌정 사상 첫 여성 군통수권자인 박 대통령은 차분한 대응 자세를 보여줬다. "북한의 도발에는 강력 대응한다"면서도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하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하겠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내보냈다.
저성장 전망 등 불확실한 대내외 경제 여건도 새 정부에게 던져진 숙제이다.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4·1부동산 대책 관련 후속 조치 등을 4월 국회에서 무난히 처리할 수 있는지를 일단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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