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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고? 너만 그런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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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고? 너만 그런게 아니야"

입력
2013.04.14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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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선 어둡고 무거울 것 같지만 딴판이다. 더없이 유쾌하다. 관객이 다함께 "우린 죽는 거야"라고 신나게 합창하면서 끝났다.

11~14일 두산아트센터에서 선보인 한국계 미국인 극작ㆍ연출가 영진 리(39)의 '우리는 죽게 될 거야'는 사랑스럽고 멋진 작품이다. 직접 쓰고 출연해 노래하고 춤추는 1인 카바레극으로, 그가 이끄는 인디 록 밴드 '퓨처 와이프'가 함께한다.

내용은 자전적이다. 집안의 왕따였던 삼촌, 어린 시절 겪은 따돌림, 남자 친구가 떠났을때 느낀 아픔, 아버지의 어이없고 비극적인 죽음, 친한 친구가 겪은 끔찍한 고통 등을 말과 노래로 풀어간다. 외로운 이, 가엾은 이,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한 노래다.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는 가사는 공감과 연민을 전한다.

외로움과 슬픔, 고통,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전혀 어둡지 않고 그 반대다. 죽음이 닥친 할머니의 노래는 익살스럽기조차 하다. "너도 늙으면 정신이 나갈거야. 너는 세상이 지고 가는 짐짝이 될 뿐이야." 그러자 엉엉 우는 딸에게 "오버하지 말고 입 닥쳐"라고 하는 대꾸하는 가사에는 폭소를 참을 수 없다.

이 작품은 위로다. 그래, 우리는 다 죽는다니까, 라고 맞받아치며 삶을 긍정하는 진솔한 연극이다. "네가 뭐라고 생각하길래 비극이 비켜갈 거라고 생각해? 상처받지 않을 만큼 네가 그렇게 특별해? 끔찍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라는 노래는 이런저런 일로 다친 마음을 쓰다듬어준다. 심술 사나운 운명이 어떤 해코지를 하든, 이쯤 되면 그래봤자다.

영진 리가 한국에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에서는 실험극으로 꽤 유명하다. 2003년 뉴욕에서'영진 리 극단'을 만들어 직접 쓰고 연출한 문제작들을 발표해 왔다. 2007년 오프브로드웨이의 오비상 신진극작가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흑인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 코미디 '선적'(Shipment)으로 2009년 뉴욕의 공연 베스트 10에 꼽혔고, 지난해에는 6명의 여성이 전라로 춤추는 무언극 '무제-페미니스트 쇼'를 내놓는 등 대담하고 도발적인 작품을 선보여 왔다.

'우리는 죽게 될 거야'는 그가 직접 출연까지 한 첫 번째 작품이다. 출연을 결심한 이유가 재미있다.

"작품을 할 때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제일 하기 힘든 게 뭘까 생각한다. 그게 연기더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악의 공연 형태를 생각해보니 직접 노래하고 춤도 추는 1인 카바레극이더라.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노래와 춤은 어설프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함으로써 나 자신의 편견을 극복한다."

예전에 선보인 공격적인 작품과 달리 따뜻하고 편안한 작품이기도 하다.

"큰 고통이나 비극을 겪어본 적이 없다가 아버지의 어이없는 죽음에 화가 났고 무력감을 느꼈다. (폐암으로 투병하던 그의 아버지는 인구의 2%만 갖고 있는 특별한 유전자 보유자에게 효과가 있다는 기적의 신약 치료를 기다리다가 그 2%에 해당한다는 최종 판정을 받은 날 사망했다.) 그때 생각했다. 내 작품으로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지 말아야겠다고. 나중에 또 그럴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다."

'우리는 죽게 될 거야'는 2011년 뉴욕에서 초연됐다. 당시 "최근 10년간 뉴욕에 등장한 공연 중 가장 모험적인 작품" (뉴욕타임스) , "장난스럽지만 파괴적이고 주체할 수 없이 흥겨운 작품"(빌리지 보이스) 등 호평과 함께 그해 오비상 특별상을 받았다. 링컨센터 초청으로 지난해 링컨센터 클레어 토우 극장에 올라간 데 이어 올해 다시 초청을 받아 8월 5~17일 앙코르 공연을 앞두고 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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